막걸리의 다양한 종류에도 관심이 생겨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막걸리를 늘 경험하곤 했다. 그렇다고 각 지역 양조장을 꿰고 그 특징과 맛을 구분할 수준에는 미치지는 못한다. 막걸리 전문점에서 짐짓 다 안다는 듯이 "송막 주세요" 하는 정도다.
문제는 택배로 받아 볼 수 있는 최소 단위가 한 상자, 스무 병이라는 점이다. 한 병에 900㎖, 생막걸리니까 10일 안에 먹어야 한다. 잔치라도 벌일 생각이 아니라면 엄두가 나지 않는 양이다. 하지만 삶은 늘 잔치 같아야 하니까. 머뭇거리다 어느 날 기어코 주문을 하고야 말았다.
냉장고 한 칸을 다 비우고 갓 만들어 배송된 생막걸리 스무 병을 차곡히 채우는 기분은 해 본 사람만 안다. 옛날 곳간에 쌀가마깨나 쌓아 본 부농의 마음이 이럴까. 바라만 봐도 든든해 자꾸 냉장고 문을 열게 된다. 그렇게 10여 일 동안 냉장고 문을 여닫으며 돼지고기를 삶고, 묵은 김치를 썰었다. 두릅을 데치고 감자전도 부쳐 가족들과, 친구, 선배, 후배들과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선물도 했고, 주말여행을 갈 때 들고 가기도 했다.
올해 정월대보름을 맞아 '귀밝이술'로 막걸리를 주문한 것도 좋은 소식 때문이었다. 이번엔 울산에 있는 한 양조장에서 손으로 빚는다는 막걸리를 선택했다. 한 병에 요구르트 100병 분량의 유산균이 들어 있다는 말에 혹했다. 정월대보름의 귀밝이술은 귀가 밝아지라는, 그래서 한 해 동안 좋은 소식만을 들으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마시면서 기원했다. 정말 올해는 좋은 소식만 듣기를, 숙변 같은 이 정국 깨끗이 내려 보내는 좋은 소식만 들을 수 있기를.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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