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환경변화에 대응해 성과를 높이겠다는 취지 아래 과학기술 거버넌스 개편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대부분 개편된 거버넌스 체계가 작동하자마자 곳곳에서 삐걱거림이 들리고 연구자들은 종종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 개선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정부는 다시 새로운 방안을 찾아 조직개편에 나서는 비효율적인 과정을 반복해 왔다. MB정부 중반에 행정위원회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설립되었으나 박근혜정부가 폐지를 하고 이후 다시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설치하는 과정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데 올 초에 열린 행사를 보면서 과거와 같은 과정이 다시 반복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변화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논리없이 여전히 조직구조 변화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를 위한 진단은 현재 정부구조에서 나타나는 중복, 비연계성 등 효율성 부족 문제에 주로 고착되었다. 그러다보니 미래 환경변화와 우리의 대응역량이 제대로 분석되지 못했고 우리나라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고려없이 선진국을 모방한 차별화에 그치고 있었다. 즉, 변화의 필요성과 변화의 방향에 대한 논리적 접근없이 새로운 구조적 변화 그 자체만이 강조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미래 시장의 불확실성과 우리의 역량과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민간과 협력해 국가 차원의 혁신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적절한 역할을 통해 혁신에 수반되는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또한 국가혁신전략 이행을 위한 교육, 제도개선 등 전반적인 환경도 정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조직구조는 새로운 국가 차원의 혁신전략 수립과 이행에 필요한 구조와 운영체계로 개편되어야 한다. 기존 정부부처들이 해오던 업무의 효율성 개선을 중심으로 한 협의의 구조개편에 한정된다거나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포퓰리즘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5년마다 대목을 만난다는 정부조직 전공 행정학자에 의한 접근은 더욱 안된다.
미래 국가의 혁신방향과 혁신전략을 수립하려면 정보와 지식, 미래에 대한 통찰력 등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나아가 수립된 전략의 이행과정에도 전문적인 지식과 역량이 요구된다. 과거 정권에서 전문적 분석없이 특정 의견이 그대로 국정과제로 채택되면서 갈등과 비효율성을 지속적으로 야기시킨 과정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국가 차원의 혁신전략 수립이 관련 부처 어느 한 부서의 일부 업무로 다루어져서도 안 된다.
이민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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