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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분양가 조정, 선한 정책의 역설

최종수정 2018.06.12 11:17 기사입력 2018.06.04 13:53

2, 925, 84875, 105, 1, 100000.

웬 뜬금없는 6개의 숫자냐고? 일정한 규칙성을 찾기 어려운 이 숫자들은 일명 로또 아파트로 불린 경기도 하남 '미사역 파라곤' 1순위 청약과 얽혀 있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미사역 파라곤 청약은 그야말로 전쟁통이었다. 오전 8시 인터넷 청약이 시작되자마자 한꺼번에 몰려든 청약자로 인터넷 시스템은 다운됐고 일부 은행 창구는 직접 찾은 청약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 역시 관련 단어들이 장악했다. 급기야 청약 마감 시간이 2시간 연장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925가구 모집에 뛰어든 청약자는 총 8만4875명. 105대 1의 평균 경쟁률을 기록하며 역대 중ㆍ대형 아파트 청약 중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긴 하다. 이 아파트 분양가는 상한제를 적용받아 주변 시세보다 최대 4억원가량 싸게 정해졌다. 이렇다 보니 하남은 물론 인근 경기도와 서울 일대 동원 가능한 청약 통장은 모두 나올 것이란 얘기가 나돌았다. 오죽했으면 10만 청약설이란 말이 회자됐을까.

사실 취지는 좋았다. 분양가 정책을 통해 주변 집값의 과도한 상승을 막겠다는 의도였다. 정부의 이 같은 정책에 반대할 수요자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싼 아파트를 청약해 당첨되면 한순간에 수억 원의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온통 로또만 꿈꾸며 '묻지 마 청약'에 나섰다. 마치 2010년 반값 아파트로 불린 보금자리주택 청약 당시 열풍이 휘몰아쳤던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부동산 투기꾼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선한(?) 정부가 아이러니하게 묻지 마 투기를 부추긴 상황이 된 셈이다. 지난 3월 분양한 강남 로또 아파트 '디에이치자이 개포'도 그랬다. 강남 로또 아파트에 대한 이상 과열 열기는 위장전입, 대리청약 등의 불법 행위로 이어졌고, 급기야 예비 청약자 일부를 주택시장을 교란한 불법자로 만들었다.
로또 아파트 논란이 서민들의 박탈감을 키우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미사역 파라곤만 하더라도 오는 8일 당첨자가 발표되면 925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배 아파할 게 뻔하다. 청와대의 국민청원 게시판에 '분양가 상한제 적용 아파트의 양도세를 강화해달라' '전매 제한을 강화해달라'라는 등의 불만 섞인 청원이 쇄도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서민을 위해 내놓은 선한 정책이 서민의 박탈감을 키운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주거비용 때문에 고통받는 서민들을 위해 분양가를 규제하는 정부의 '선한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나, 시장을 통제하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귀결된다. 정부가 분양가를 뜻대로 통제하더라도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분양권 시세와 주변 집값을 통제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이 피해는 정부가 그토록 보호하려고 했던 실수요자 서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막대한 전매 차익은 일부 투기꾼이 챙기고 정작 살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는 부풀려진 가격에 분양권을 구입해야 하는 것이다. 강남 보금자리 아파트 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이것이 바로 '선의의 역설'이다.

분양가 통제로 로또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끓고 있지만 강화된 대출 규제로 종잣돈이 넉넉하지 않은 서민들의 박탈감이 더 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선한 대책이 낳은 폐단이다. 분양가 제한으로 생긴 로또 아파트의 혜택을 실수요자가 아닌 자금 여력이 충분한 현금 부자가 독점하고 있어서다. 선한 대책이 본래 의도한 집값 안정화가 아닌 부동산시장의 빈익빈 부익부만 초래한 셈이다. 섣부른 선의만으로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이은정 건설부동산부장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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