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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열아홉살, 그 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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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여자는 19살이었다. '어른들이 정해주면 그냥 가서 사는' 시절이었다. 밤이면 매양 사과꽃처럼 가슴이 흐드러지고 몹시도 그가 궁금하였으리라. 달뜬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을까. 동네 사랑방에 청년들이 모여 놀고 있을 때, 담벼락 너머로 그를 몰래 훔쳐 봤다. 다행이다. "보기 괜찮더라구요"

그렇게 시작한 그와의 시간은 고작 7개월이었다. 1950년 7월, '열흘만 훈련받고 오겠다'던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사라졌고 새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임신 3개월째의 여자는 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65년이 지나갔다. 그 시간동안 여자는 혼자였다. 오로지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다. 머리 자르고 파마하면 마음 변해서 시집 가려 한다는 얘기라도 들을까봐 생머리에 비녀 꽂고 줄곧 살았다. 남편은 오래 전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다. 37년간 제사를 지냈다. 절은 하지 않았다. 절 받아야 할 사람은 본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2015년 가을, 금강산에서 남편을 다시 만났다. 그는 죽지 않았고 북녘 땅에 있었을 뿐이다. 이산가족 상봉장은 가장 밀도 높은 먹먹함이다. 고랑고랑 패인 얼굴들 아래로 눈물이 솟구쳐 오른다. 눈물은 원래 제각각 심도가 다르다. 아득히 깊은 곳에서 꿀렁이며 복받쳐 오르는 눈물이다. 지치고 상처받은 짐승들처럼 꾸역거린다.

부부의 만남은 좀 다르다. 할머니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다. 눈물이 말라 비틀어졌다고 한다. 오히려 싱거운 웃음을 간간이 터뜨린다. 여자는 이제 백발의 할머니다. '보기 괜찮았던' 남자는 주름 깊고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북에서 5남매를 두고 있다고 했다. "잘했네" "이해해라. 다 전쟁 때문이다"

할머니가 끝내 한 마디를 내어 놓는다. "봐요.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얼마나 넓은지 알아요?" 65년의 세월은 가늠되지 않는다. 기다릴 수도 없었던 그 시간동안, 할머니는 사랑을 생각했던 것일까. "절대 울지 말라"던 할아버지는 연신 눈물을 보인다. 할머니는 울지 않는다. 다만 떠나는 버스에 올라탄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려 말한다. "한 번만 더"
이순규 할머니 얘기다. 전쟁은 마음 없는 야수의 발톱으로 산 자들의 삶까지 찢어발긴다. 끝나야 한다. 여자는 19살이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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