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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가자지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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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생후 8개월 여아가 죽었다. 이름은 라일라 알 간도르. 탐스러운 검은 머리칼에 커다란 녹색 눈이 무척 예쁜 아기다. 그녀는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이 예수살렘으로 이전한 지난 14일,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이 발포한 최루가스에 노출됐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숨이 멎었다.

가혹한 피바람이 가자지구를 휩쓸고 지나간 다음 날 라일라의 부모는 조촐하게 장례식을 치렀다. 아버지 안와르 알 간도르(25)는 "라일라의 희생은 예루살렘과 조국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발 내 딸을 데려가지 말라'라고 신에게 울부짖던 어머니 마리암(17)은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라일라는 예수살렘이, 팔레스타인이 무엇인지 알기엔 너무나 어렸다. 이번 사태로 목숨을 잃은 60여명 가운데 16세 이하는 8명으로 파악된다. 14세 딸을 잃은 아버지 림 아부 이르마나는 "딸이 죽은 그 자리 또는 할아버지의 무덤 옆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소중하지 않은 목숨,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냐만 어른들의 이기심이 빚어낸 분쟁 속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죽음은 더 뼈아프다. 무엇보다 민간인을 향한 실탄 발사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부분이다. 무장하지 않은 시위대를 향한 무차별 살포가 과연 이스라엘과 미국의 주장대로 '정당한 공권력 행사' '방어'일 수 있을까.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의 반발로 긴급회의에서 끝내 성명을 채택하지 못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라일라의 죽음이 또 다른 분쟁의 선전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보복이 임박했다"고 이스라엘에 경고했다. 시위대는 그녀를 순교자로 표현했다. 한 생명에 대한 순수한 슬픔이 정치적 광경과 뒤섞이는 장면이라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절망과 분노 속에서 분쟁의 역사는 반복된다.

이스라엘 출신 정치학자 일란 파페가 예루살렘 땅에서 오랜 분쟁을 종식할 해법으로 저서 '팔레스타인 비극사'에서 제시한 내용은 단순하지만 동시에 본질적이다. 시민 중심의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갈 것, 과거의 비극에 대한 법적ㆍ도덕적 책임을 질 것. 그래야만 유대인과 아랍인의 평화적 공존이 가능해진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도 라일라 모녀와 이름이 같은 주인공 라일라와 마리암이 등장한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피워낸 두 여성의 이야기다. 가자지구에도 언젠가 다시 찬란한 태양이 뜨길 바란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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