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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보유세와 창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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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왕 윌리엄 3세가 1696년 도입한 '창문세'는 일종의 부자증세다. 한 주택에 존재하는 창문의 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방향 자체가 넓은 집을 보유한 부유층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자신의 집 창문 수만큼 낸 세금으로 아일랜드 구교도의 반란을 저지하고 왕실의 재정난을 막겠다는 게 윌리엄 3세의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는 오판이었다. 윌리엄 3세의 판단과 달리 세금에 부담을 느낀 부자는 물론 서민들까지 합판이나 벽돌로 기존 창문을 막아버렸다. 창문이 없는 새집도 속속 등장했다. 세금에 대한 저항감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프랑스에도 비슷한 세금이 있다. 바로 루이16세가 도입한 창문폭세다. 영국과 달리 창문의 폭에 따라 책정된 이 세금 역시 부자들이 창을 넓게 낸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이 역시 부자는 물론 서민들의 조세저항을 불러왔고 결국 프랑스 혁명의 단초가 됐다.

'세금'하면 공평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론 힘은 논리에 따라 운영된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조세체계는 '공평과세'란 그럴싸한 명목으로 포장돼 있지만 정권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게 세금이다. 세금의 본질이 집권 세력의 권력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정치적 폭발성도 크다. 프랑스 혁명을 불러온 창문폭세 처럼 세금을 만만하게 다뤘다가 자칫 정권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우리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참여정부 시절 신설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그 경우다. 참여정부는 당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상위 2%에게를 타깃으로 한 종부세를 신설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종부세 대상인 집주인들이 세금 인상분만큼 전월세를 올려 세입자에게 전가하면서 집값 안정화 효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세금폭탄' 프레임으로 연결되면서 선거 참패란 결과를 야기했다. 종부세를 창문세와 같은 황당한 세금으로 깎아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정권의 운명을 흔들만큼 폭발력이 컸던 세제였던 건 분명하다.

참여정부의 정신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가 요즘 부동산 관련 세제 개편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양도세 중과,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 등 참여정부 시절 도입했던 각종 세제를 되살렸고 종부세 신설에 버금가는 보유세 인상 카드도 이달말 출범할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재정개혁특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부동산 보유세 개편 논의가 본격화되면 강남 부동산 부자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어느때보다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세금 카드로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부동산 부자를 겨냥한 세금 정책을 급하게 펼치다간 애먼 세입자에게 불똥을 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시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가 집값 안정화를 위해 5년간에 걸쳐 내놨던 부동산 대책을 이미 9개월만에 다 쏟아냈다. 보유세 인상 등의 세제개편은 지금까지 내놓은 대책의 효과를 보며 천천히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새해 초 무섭게 날뛰던 강남 집값은 최근 들어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기준 서초구 아파트값 상승률은 전주보다 0.25%포인트 떨어진0.20%를 기록했다. 송파구의 주간 상승률도 0.76%에서 0.38%로 둔화됐다. 강남 집값을 잡기위해 세제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는 강박증을 버릴 필요가 있다.

부자증세든, 서민증세든 세금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2% 의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리면 나머지 98%가 지지할 것으로 봤던 참여정부가 왜 실패했는지를 되새겨 볼 때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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