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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콘'으로 둘러싸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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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호 산업2부장

소민호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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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콘'이란 용어가 있다. '넛지'의 저자로 유명한 리처드 탈러의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이란 책에 소개돼 있는데, 매사 합리적이이서 현명하게 대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행동경제학을 주창하는 이들이 흔히 이 용어를 사용한다고 돼 있다. 그런 이콘들이라면 허술하지 않은 치밀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일일 듯하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명확한 인과관계 없이 막연한 기대감이나, 혹은 착각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자발적으로, 혹은 강제적으로, 그것도 아니면 눈치를 보면서 빤히 보이는 손해를 감수한다. 단기적인 손익을 계산하기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득실을 판단해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하지 못하는 수도 있다. 좁은 시각으로 접근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사람은 실수하며 살아간다고 하는 말에 쉽게 수긍을 하는 것 같다. 사소한 잘잘못을 스스로 용인해주고, 또 다른 사람의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주는 관용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것이 보다 삶을 여유있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점은 사적인 영역에서나 통하는 법이다. 공적인 영역에서 잘못을 덮어주는 문화가 자리잡게 되면 구조적 부패와 부정을 만들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작년 하반기부터 목격한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이로인해 대통령이 임기 도중 탄핵되고 급기야 파면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오늘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받아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 현장에 출석했다. 영장심사 제도가 도입된지 20년만에 전직 국가원수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이나 그를 보좌한 수많은 참모, 비선실세는 이콘이 아니었을까. 잘못이나 부정한 행위를 하면서 그 위중함을 몰랐을까. 권력을 쥐고 있는 동안 그 맛에 취해 방조적이었던 것일까.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그럼에도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화려한 경력이나 고상한 지위, 든든한 배경 등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잘못된 행위를 수없이 반복해왔을까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다. 각양각색의 혜안을 가진 집단이 최악의 국정참사를 만들어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더욱이 그동안 보여준 과거의 행적을 철저하게 부인하는 모습까지 보여오지 않았던가.

이 대목까지 이르면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콘이라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무수히 벌어졌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또한 세월이 갈수록 교육에 의해 더 똑똑한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며 이에 질새라 인간의 지능지수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이 모두를 이콘으로서 생각하고 판단, 행동하게 만들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 순간적인 착오, 착시 등이 있을 수 있고 감정이나 환경여건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하게 마련이어서다.

그럼에도 하나는 분명하다. 향후 탄생할 정권은 보다 장기적 안목, 넓은 시각을 가진 이콘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눈앞의 이익에 골몰해 '언 발 오줌 누기식'의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비선에 의존한 채 소통을 포기한 폐쇄적 문화 대신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이 물밀 듯 나오고 있다.

이제 곧 4월이다. 시인 엘리엇(T.S.Eliot)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시에서 표현했다. 초록이 샘솟는 4월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에서다. 대선 후보들이 새겼으면 한다.






소민호 산업2부장 sm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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