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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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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철 금융부장

이의철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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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가격이 너무 비싸다. 예전엔 부라보콘이 300원이었는데, 지금 편의점에선 1500원이다. 이건 기업들의 음모다. 제조업체나 편의점에서 폭리를 취하는 게 틀림없다." 모 국회의원이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부라보콘의 가격을 500원 이상 받지 못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가정해보자. 너무 우스꽝스러운가? 현실성이 없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내년 한 해에 한해 상가와 주택 전·월세 동결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1 야당의 정책위의장이 진지하게 한 말이다. 당정 정책조정회의에서 한 얘기니까 적어도 농담은 아니다. 민주당은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 도입도 추진 중이다. 전·월세 인상률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고 전·월세 계약이 끝났을 때 임차인이 집주인의 동의 없이 계약 연장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세상 일이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배춧값이 너무 비싸면 '배춧값을 포기당 500원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고, 전세가격이 뛰면 '전세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집값의 50%를 넘지 못하는' 규제를 만들고... 이런 정책이나 법안은 거래 상대방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문제 외에 "과연 가격 메커니즘이 정상으로 작동할 수 있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금융당국과 은행 간의 신경전도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은 주택담보 대출 금리가 갑자기 너무 오르니 이를 낮추라는 것이고, 은행은 실세금리가 뛰고 있는데 인위적으로 금리를 낮출 수 있냐고 항변한다. 여기엔 금리가 오르면 이자부담에 고통을 겪는 서민에 대한 금융당국의 지극한 배려심(?)이 있다.

그런데 모든 상품이나 재화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 돈의 가격인 금리도 예외가 아니다. 수요가 많으면(돈을 쓰려는 이들이 많으면) 금리는 올라간다. 반대로 공급이 많으면(돈이 많이 풀리면) 금리는 내려간다.
일반적으로 은행의 대출 금리는 '기준이 되는 금리+담보력+대출자의 신용+목표이익률'로 결정된다. 담보력은 일종의 기회비용이고, 신용은 위험프리미업이다. 금융당국이 주목하는 것은 가산금리를 결정하는 목표이익률이 각 은행별로 다르다는 얘긴데, 이건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오히려 같은 게 이상한 것 아닌가.목표이익률은 은행의 마케팅 전략이나 노하우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익을 많이 내고 싶다고 자의로 올릴 수는 없다. 공격적인 영업을 하는 은행은 목표이익률을 낮춰 잡을 것이고, 보수적으로 운용하고자하는 은행은 목표이익률을 높여 잡을 것이다. 은행 ROA(총자산순이익률) 대비 목표이익률을 문제 삼는 것이라면, 현대자동차가 그랜저 한 대 팔 때 얼마나 이익을 남겨야 하는지를 국토교통부가 정해야 한다는 건지?.

주거비용 때문에 고통받는 서민들을 위해 전월세 상한선을 정하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선의', 주택담보대출금리가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자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겠다는 금융당국의 '선의'를 모르는 바 아니나, 무릇 가격을 통제하고자 하는 그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자원을 국가가 배분하는 계획경제, 사회주의 국가에서조차 그랬다.

가격을 통제하려는 정책은 언제나 그리고 반드시 정책의 실패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땐 시장의 보복이 따른다. 그 보복은 통상 정부가 그토록 보호하고 싶어 한 바로 그 '서민'을 향한다. 그래서 지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선의'로 포장돼 있다.






이의철 금융부장 charl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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