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숨이 가쁠 정도로 달려왔다. 2010년대 들어서 불황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바쁘고 소란스러운 나라다. 세월이 흐르면 한쪽으로는 시대에 맞춰서 몰라보게 바뀌는 분야들이 있지만 또 다른 한 곁에서는 세상과 무관하게 정체되고 오히려 퇴보하는 분야도 있다.
더욱이 당시만 하더라도 국책연구소나 민간연구소, 그리고 각종 경제단체 연구소의 목소리가 높았다. 민ㆍ관을 가리지 않고 작은 정부와 규제 혁파의 기운이 셌다. 물론 주장이 현실로 바뀌는 것 사이는 큰 간격이 있었지만 시대정신은 작은 정부와 규제 혁파를 통한 한국 경제의 재도약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 기조는 실천 면에서 크게 부족하였지만 근래까지 주장으로서는 타당성을 가져왔던 것은 사실이다.
근래에 한국 사회는 큰 정부를 향한 방향 선회가 뚜렷하다. 그런 방향 선회에도 불구하고 공론다운 공론은 우리 사회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공약 사항이기 때문에 방향 선회를 해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된다. 여기서 점검해봐야 할 일이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단임제를 선택하고 있는 한국은 경제 정책면에서는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것은 새로 등장하는 정부마다 정부개입을 강화하는 정책을 집행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재원을 쏟아붓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새로운 정책이 집행돼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정책들은 가능한 한 엄밀한 이론과 경험의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론이 가진 강점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각이나 주장에 바탕을 둔 설익은 정책 때문에 한 사회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을 줄이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 어느 곳에서도 엄밀한 실증 분석 등과 같은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집권정치 세력의 성격과 무관하게 한국 사회에 대단히 큰 손실이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있지만 나라 전체에 두고두고 영향력을 발휘한 정책에 대해 토론다운 토론이 이뤄지는 것을 근래에 거의 볼 수가 없다. 몸은 훌쩍 커 버렸지만 정신은 빈약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아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없다. 모든 것이 정치와 관치의 영향력 하에 놓인 사회는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론과 경험에 바탕을 두고 정치적인 중립을 유지한 채, 독자적인 비판의 소리가 활발하게 들리는 것이 사회적인 비용을 줄이는 길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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