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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약촌오거리 사건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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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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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의 진범에게 징역 15년 형을 확정했다. 진범이 처벌되기까지 무려 18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16세 소년이었던 최 군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무려 10년 수감생활을 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진실을 밝혔던 한 변호사의 재심청구를 통해 비로소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많은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됐고 영화로도 상영됐다.

다시는 억울하게 형사처벌을 받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이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형사법의 대원칙이지만, 현실적으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약촌오거리 사건은 수사 초기 단계부터 문제였다. 경찰관이 최 군을 체포한 후 모텔로 연행해 폭행했고, 다시 경찰서로 연행 후 잠을 재우지 않은 채 발바닥을 경찰봉으로 때리거나 엎드려뻗쳐 자세를 하게 한 후 엉덩이와 허벅지를 때렸다. 군부 독재시절에 있었던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인 2000년에 있었던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도 최 군처럼 성인이 아닌 방어력이 약한 16세 소년을 체포할 경우 불법 폭행이나 강요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에 대해 수사 초기 단계부터 세심한 보호가 필요하다.

최 군은 가혹행위 때문에 허위 자백을 했고 유죄가 확정됐다. 검찰은 자백만 믿고 기소했고 1심 15년, 2심은 10년을 선고했으며, 최 군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형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자백이 주는 유죄의 심증에 치우쳐 다른 합리적인 의심할만한 사유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잘못된 재판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최 군이 상고를 포기한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 군은 2심까지 유죄가 나오자 더 이상 다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여 상고를 포기했다. 그의 억울함과 절망감이 그대로 느껴져 가슴 아프다.

우리 법원의 유죄 인정률은 너무 높다. 2016년 무죄율은 1심 3.2%, 2심 5.4%, 3심은 7.8%에 불과했다. 변호사들 간에는 일단 기소되면 유죄가 추정되므로 피고인이 무죄를 입증해야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약촌오거리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허위 자백을 가볍게 믿은 잘못된 기소가 이루어졌는데도 법원이 이를 합리적 의심을 통해 제어하지 못한 채 유죄를 선고했다. 1ㆍ2심 모두 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뼈아픈 과오다.
기막힌 것은 사건 발생 후 3년이 지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가 군산경찰서에 입수됐다. 군산경찰서는 2003년 6월 5일 진범을 체포했고, 진범은 자기 대신 무고한 최 군이 누명을 쓰고 복역한 사실에 대해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진술했다. 진범은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을 상당히 신빙성 있게 진술했다. 이때 제대로 수사했다면 최 군의 억울한 옥살이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을 지휘한 검찰은 물증인 흉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진범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계속 반려했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선고된 이후인 2016년 11월 19일에야 진범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검찰이 최 군에 대한 잘못된 수사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진범에 대한 구속수사에 소극적인 것은 아니었는지 의문이 든다. 잘못된 수사를 한 것은 문제지만 이를 고의로 은폐하려고 했다면 훨씬 더 큰 문제다.

최 군의 억울한 옥살이는 여러 단계에서 충분히 방지될 수 있었다. 불행히 어느 한 단계에서도 형사절차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 16세 소년의 꽃다운 10년을 그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필자는 약촌오거리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완전히 개선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약촌오거리 사건을 기억하고 반성하며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으면 같은 일이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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