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라이스를 괴롭혔다. 라이스의 전화 안 받기, 사무실에 있으면서 없는 채 하기, 말 못들은 척 무시하기, 면전에서 면박 주기 등으로 라이스를 괴롭혔다. 마침내 라이스는 회의 석상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이렇게 인간성이 나쁜 럼스펠트지만 그럼에도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는 위대한 업적이 있다. 그것은 미군의 ‘충격적인’ 혁신이다. 럼스펠트는 2차 대전 이후 확립된 전통적인 미군의 전쟁 수행 개념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전까지 미군의 전쟁 수행 방식은 육군을 중심으로 해군과 공군이 보조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럼스펠트는 거꾸로 공군을 중심으로 적을 공격하고 육군을 청소부 역할로 전락시켰다. 그가 강조한 것은 군의 문민 통제(civilian control)와 ‘이빨 대 꼬리 비율’(the teeth-to-tail ratio)’이다. 문민 통제는 군에 대한 민간의 확고한 통제를 의미하고, 이빨(전투병력) 대 꼬리(지원병력) 비율은 이빨을 강화하고 꼬리를 최소화하자는 전략이다. 이렇게 되면 이빨은 공군이고 꼬리는 육군이 된다.
이런 혁신의 결과는 우리가 기억하는 전쟁의 게임화다.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저 머나먼 중동에서 미 공군 전투기가 바그다드를 공습하는 장면을 시청했다. 공습하는 전투기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목표물인 건물과 인간이 살해되는 장면을 슈팅게임 하듯 지켜볼 수 있었다. 전쟁 시작 20일 만에 바그다드가 점령되었고, 미군 전사자는 공식적 전쟁 기간인 2003년 3월 이후 두 달 간 139명에 불과했다. 미군이 역사상 최초로 패배한 베트남전에서 미군 전사자는 5만 7939명, 부상자 75만 2000명에 이른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결과다.
항상 혁신에는 기득권자의 저항이 따르는 법이다. 군 전략의 혁신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손발이 잘리는 육군의 저항이다. 미 육군과 국방성도 럼스펠트의 개혁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이 저항은 토머스 화이트 미 육군장관과 에릭 신세키 참모총장이 잘린 후에야 멈추었다. 럼스펠트는 부도덕한 전쟁을 일으킨 악당이지만 이런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분쇄한 혁신가(?)이기도 하다. 어쩌면 악당이었기에 혁신이 가능했던 것 아닐까.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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