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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쌍둥이 자매 전교 1등 논란'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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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히다. 서울 강남의 모 명문 여고에서 2학년생인 쌍둥이 자매가 문ㆍ이과 전교 1등에 올랐다는 사실을 두고 벌어지는 최근 소동을 보며 든 생각이다.

어쩌면 지역사회의 미담에 그쳤을 소식인데도 자매가 1학년 1학기 때 각각 전교 59등, 121등에 불과했으며, 그들의 아버지가 그 학교의 교무부장이란 사실이 겹치며 언론의 사회면을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일부 학부모가 교육지원청에 "기말고사에 의혹이 있다"는 민원을 제기하고,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의혹 규명' 청원이 오르면서 해당 학교 측과 교무부장이 소명서를 내는 등 논란은 확대되고 있다.
자매의 부친인 교무부장은 아이들이 1학년 2학기 때는 2등, 5등으로 올랐으며 "하루에 잠을 네 시간도 안 자고, 수학 클리닉에 다니며" 실력을 쌓아 성적이 급등했다고 주장한다. 의혹을 제기하는 측은 인근 수학 학원에서도 하위권 반에 있던 자매가 벼락치기로는 성적이 쑥 오를 수 없는 강남에서 그런 결과를 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진상이야 알 수 없다. 서울시교육청이 장학사를 파견해 현장조사를 벌이고 특별 감사에 착수했다고 하니, 그 결과를 봐야 과연 일부 학부모들이 품고 있는 '시험지 유출 의혹'이 가려질 터다. 단 개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자매의 경이적인 '성취'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세칭 일류라던 중학교 시절 불과 한 학기 만에 학급 석차가 30등 이상 뛰어본 적이 있어 하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런 사실이 뉴스거리가 되는 교육 현실이다. 이번 사태는 내신 1~2점에 목을 매야 하는 각박함, 그래서 교직원이면 자녀를 위해 부정행위도 감행할 수 있으리라는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설사 시험지 유출이 있었다 해도 사회면 한구석의 작은 기사로 처리돼야 합당하지 않을까. 뉴스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는 여러 기준이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곰곰 생각해보면 이번 사태의 원인(遠因)은 대학입시제도 자체라 할 수 있다. 수능 점수나 학생부종합전형(학종) 평가로 이른바 좋은 대학 입학 여부가 결정되고, 그것이 직장 등 평생의 행로를 좌우하는 현실에서 점수에 의연할 학생, 학부모가 몇이나 될까.
여기서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내신과 수능을 축으로 하는 현행 입시제도는 사교육 감소와 전인 교육을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사교육이 줄었는가. 자매들이 수학 학원에 다녔다는 사실에서도 엿보이듯이 사교육은 늘면 늘었지 줄지 않았다고 본다. 전인교육 역시 의도는 좋지만 외려 입시 지옥의 연장만 불러온 감이 있다. 항간에 고교 1학년을 망치면 서울대를 못 가고, 2학년을 헛 보내면 스카이(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를 포기해야 하고, 3학년을 흘려보내면 '인(in) 서울'대를 꿈도 못 꾼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교 3년이 사실상 입시 시즌이란 뜻이다. 내신을 위해 '영혼 없는' 봉사를 찾아 헤매는 실태는 전인교육에 어떤 이바지를 했는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현행 대입제도는 '만회'의 기회가 없다. 고교 2, 3학년 때 뒤늦게 철이 들어도 이른바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러니 3년 내내 점수에 예민해져 학교는 학생들이 출전하는 '만인을 겨냥한 만인의 전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럴 바에야 시험 과목을 대학 스스로 정하는 대학별 본고사를 부활시켜도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을 듯하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향후 일생이 좌우되는 현실을 고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만 3년이란 사실상의 입시 지옥에서 학생들을 풀어주고, 출발이 늦은 학생들에게도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편이 그나마 낫지 않을까.

'쌍둥이 자매 전교 1등'이 빚은 소극(笑劇)을 보면서 문득 학생들에게 명랑한 학창시절을 돌려주는 방안이 없을까 싶어 든 생각이다.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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