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청춘,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면서 노숙, 단식, 삭발, 고공농성까지 벌였다. 2010년, 드디어 1심 판결이 나왔다. “해고는 무효이며 이들에게 밀린 월급을 지급하라!” 이듬해 2심 판결도 이를 확인해 줬다. 기나긴 투쟁의 끝이 보이는 듯 했다. 힘겨웠던 날들은 그저 추억으로 남을 줄 알았다. 모두들 예전 일터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대법원 판결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들은 2015년 2월 26일을 절대 잊지 못한다. 대법원의 ‘파기 환송’ 판결로 KTX 해고 승무원들의 복직은 물거품이 됐고, 그 동안 받은 임금은 1인당 8,640만원의 빚이 되어 돌아왔다. 그들은 며칠 밤을 새며 울었다. 이자까지 붙어 하루하루 빚이 늘어나는 현실이 너무 힘들었다.
동료 지연이 세상을 떠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였다. 2016년 3월, 부산에서 1인 시위를 하기로 한 그녀가 연락이 두절됐고, 며칠 뒤 가족을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KTX 해고 승무원들은 그녀의 죽음에 대해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꼈고, 그녀를 생각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예뻐하던 세 살짜리 딸을 두고 그녀는 왜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 누가 젊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그들의 편지 한 구절이 오래 남는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의지하고 기댄 대한민국 법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법을 믿을 수 있을까.”
KTX 해고 승무원들의 수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국민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몰아서 34명의 전임자를 해고하고, 고문조작 피해자들과 긴급조치 희생자들의 망가진 인생에 대한 국가보상을 백지화하고, 합법 정당인 통진당을 강제 해산하고, 강정 해군기지와 밀양 송전탑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억압하고, 원세훈의 댓글공작이 무죄라고 강변한 것이 모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 때문이었다. 대법원장에 재직한 2011년 9월부터 2017년 9월까지 만 6년, 그는 청와대의 국정운영에 협조한다며 대명천지에 있을 수 없는 판결을 유도했고, 그 대가로 위헌적인 ‘상고법원’을 얻어내려 했다. 판결을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시켜서 사법부의 독립성과 존재 근거를 스스로 파괴했다.
이 나라의 양심과 정의를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은 처참하게 몰락했다. 진실이 왜곡되고 상식과 공공에 대한 신뢰가 실종된 이 땅에 희망이 있을까? 양승태 사법농단의 희생자인 (재)진실의힘 박동운 이사장의 지적대로 “(이대로라면) 대법원은 국가범죄의 최종 완성처”이며, “잘못된 판결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판사들은 법 위에 존재하는 예외적인 절대 권력자가 아니다. 아르헨티나는 독재 권력에 부역하여 판결을 농단한 판사들을 무기징역에 처한 바 있다. 양승태의 사법농단은 준엄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나라에 미래가 없다.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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