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많은 종교는 믿음의 상대가 무엇이냐에 따라 구분되고 그래서 믿음의 의미와 깊이도 서로 다르지만, 원시 토템으로부터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 세계 종교에 이르기까지 각 신앙의 신봉자들이 자신의 신앙 대상을 근본적인 어떤 것이라고 믿으며 그들의 열망과 희원을 투사시키고 이를 통해 유한하고 불완전한 삶의 다른 차원에 접근하려고 하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종교인에 대한 투사와 기대가 실제와 부합하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관계없이 현실적으로 그것은 종교인들에게 용맹스러운 수행과 종교적 헌신을 촉구하는 원천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규제하게 하는 강제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종교지도자 중에는 이 기대와 믿음에 보답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와 사명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자신이 누리는 특권과 지위가 바로 이 투사와 기대 덕분이라는 사실을 잊는 이들이 종종 있다. 종교적 지위와 특권이 생래적으로 주어졌거나 종교에 입문하는 순간 당연히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종교적 문제의 원인이라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종교의 문제를 모두 이들의 문제로 돌려도 괜찮을까? 그들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종교가 갖는 다른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까?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첫 질문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질문에 대답하면서 오랫동안 종교인으로서 받은 질문들이 불편하게 느껴져 늘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한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나 자신과 종교인으로서 투사받는 자신 사이에 간극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종교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을 소개하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진 것을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종교인으로서 받는 질문에 익숙해졌던가 보다.
임제 스님이 "붉은 살덩어리의 무위진인"을 말하고, 키에르케고르가 "신 앞의 단독자"를 이야기했던 것처럼 종교가 말 그대로 근본적인 그 무엇에 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종교인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에서 대중의 투사에 걸맞은 도덕성과 종교적 위엄은커녕 그것마저 저버려서 신도들의 실망과 비판의 대상이 되는 종교지도자들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고서야 어찌 승복을 벗고 천민들과 함께 무애가를 덩실덩실 추었던 원효의 후손이라고 하겠는가.
명법스님 구미 화엄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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