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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의 행인일기 75]김영갑갤러리에서

최종수정 2018.01.12 09:22 기사입력 2018.01.12 09:22

대문에 빗장을 걸지 않는 집들이 있습니다. 언제든 찾아올 사람을 기다려, 이른 새벽까지 등불도 끄지 않는 곳들입니다. 교회, 성당, 사찰…. 그곳들에 대한 우리들 믿음과 기대도 한결같지요. 티끌과 먼지를 털어주는 곳.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곳. 흐려진 눈과 귀를 씻어주고, 혼탁한 정신을 맑혀주는 곳.

 

여기도 오랫동안 그런 데였습니다. '삼달국민학교' 라는 명판(名板)의 표지석이 이곳의 역사를 알립니다. 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입니다. 마을에서 제일 넓은 마당, 24시간 열린 광장이었을 것입니다. 아이들 책 읽는 소리, 풍금소리가 내일을 믿게 했을 것입니다. 이 동네 우편물들의 임자도 대부분 여기 있었을 것입니다.

 

교장실 전화는 공중전화 노릇을 했겠지요. 추측컨대, 학교행사는 마을 전체의 축제였습니다. 선생님들은 모두의 선생님이었습니다, 브레인이었습니다. 밭 갈던 할아버지도, 궁금한 것이 생기면 학교로 뛰어왔습니다. 바깥소식과 세상 물정이 궁금한 이들은 엊그제 부임해온 선생님 하숙집에 모여 귀를 기울였습니다.

 

마을의 심장이 죽어갑니다. 폐교가 늘어갑니다. 문 닫는 것도 문제지만, 버려지는 교사(校舍)와 운동장도 걱정입니다. 도산한 공장처럼 흉물스럽고, 폐업한 양계장처럼 딱해 보입니다. 폐허가 된 절터나 궁궐터처럼 애잔합니다. 지진이나 전쟁으로 무너진 문화유적을 보는 것만큼이나 가슴 아픕니다.

 

새로운 용도나 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외진 곳, 낡은 건물에 누가 선뜻 관심을 갖겠습니까. 어찌해야 좋을까요. 묘목이 없는 꿈나무 농장, 생산을 멈춘 희망 공장. 주민들은 그저 아쉽고 서글퍼서 눈물짓고, 관계기관은 답답한 속내를 숨기기에 급급합니다. 그분들에게 이곳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137,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행복한 폐교'라면 어폐(語弊)가 있겠으나, '아름다운 폐교'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예술가의 공덕이랄 수도 있으나, 그것은 너무 좁은 소견입니다. 이곳이 한편의 영화라면, 마지막 화면에 호명(呼名)될 모든 이들에 두루 감사를 표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을 앞세우겠습니다. 누가 '대한민국 폐교 중에 가장 귀하고 어여쁘게 다시 태어난 곳'을 묻는다면, 저는 이곳을 가리키겠습니다. 이 학교 졸업생이 와서 보아도 무척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의 하늘과 오름과 바다가, 어려서 공부하던 교실에 고스란히 모여와 있으니까요.

 

외지에서 온 사진가 한 사람이 제주도의 변화무쌍한 풍경을 얌전히 길들여서 한자리에 모아놓았습니다.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하늘, 수천의 얼굴을 지닌 오름, 야생마처럼 날뛰는 파도. 이 고장의 심방(무당)과 해녀와 테우리(목동)도 쉽게 붙잡고 다스리지 못하던 자연이 그의 카메라에 '순순히' 담겼습니다.

 

'순순히'란 표현을 오해하진 마십시오. 그것은 제주의 풍경이 고분고분 카메라 속으로 들어왔다는 말이 아닙니다. 한 순간도 같은 포즈를 취하지 않는 이 섬 풍광들이, 이 독한 사진가에게 하릴없이 무릎을 꿇은 것이지요. '당신처럼 집요한 사람은 처음 봤다… 내, 졌다!' 하면서 자세를 바로 했을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김영갑(1957-2005)은 그런 사람입니다. 제주와 결혼했고, 사진에 목숨을 걸었지요. 밥도 잠도 잊고서 수많은 오름을 오르내리고, 온몸이 굳어가는 병과 싸우며 이 사진 갤러리를 만들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지요. 그의 진심과 진정성은, 이 섬이 생겨나게 한 '설문대 할망'에게도 통했을 것입니다.

 

제주에 올 때마다 들르는 곳인데, 오늘은 유난히 새뜻합니다. 김영갑 씨가 남은 목숨과 바꾼 곳, '삼달국민학교'가 보석처럼 느껴집니다. 뒤뜰 찻집 옆에는 동백이 한창 붉고, 돌담 밑엔 수선화가 마냥 곱습니다. 내일은 또 다를 것입니다. 제주의 황홀한 표정은 '삽시간 혹은 찰나'에 바뀌니까요.

 

한반도가 잡지라면, 제주도는 '호화판 별책부록'입니다. 우리에게 이 섬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아주 나쁜 질문입니다.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엊그제 오른 '새별오름'과 어제 오른 '거문오름'이 눈에 밟힙니다. 이 섬을 우리에게 안겨준 이는 대체 누굴까요. 그 분께 큰절을 올리고 싶어집니다.

 

아마도 김영갑 씨가 사랑한 분일 것입니다. 그이의 사랑 또한 간절해서, 김영갑 씨를 일찍이 불러 올리셨겠지요. 이제 관광명소가 된 이 마당에서 별 생각을 다하게 됩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세상의 학교'. 한 마을의 학교가, 온 세상 사람들의 학교가 되었습니다. 김영갑 씨도 흐뭇해할 것입니다.

 

집에서 가져온 그의 책('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표지 사진을 봅니다. 말총머리 총각입니다. 속표지에 쓰인 그의 글씨를 봅니다. '1996년 9월 12일 김영갑 드림.' 그날의 삼달국민학교를 상상해봅니다. 바람이 많이 불었을 것만 같습니다. 오늘처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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