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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모노산달로스

최종수정 2018.01.16 16:14 기사입력 2018.01.1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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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이아손은 그리스 테살리아에 있는 이올코스 왕 아이손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이복형제 펠리아스가 정권을 잡자 반인반마(半人半馬)의 현자 켄타우로스에게 맡겨진다. 청년이 된 이아손이 이올코스로 돌아갈 때의 일이다. 그는 개울가에서 노파로 둔갑한 헤라 여신을 만난다. 노파는 이아손의 등에 업혀 개울 건너기를 원했다. 이아손은 노파를 업고 개울을 건너다 한쪽 신을 잃는다. 건너편에 이르니 노파는 종적이 없다. 이올코스에 들어가자 아이들이 놀면서 이런 노래를 부른다. "모노산달로스(외짝신을 신은 자)가 와서 이올코스의 왕이 된다네…."

수유리에 있는 L극장에서 지난 9일 밤 영화 '1987'을 보았다. 알려진 대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과 6월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도 보았다고 한다. 영화는 의미에 재미를 더해 흥행에도 성공했다. 영화 속에서 이한열(강동원)과 여주인공 연희(김태리)를 연결하는 코드 가운데 하나가 '타이거'라는 흰색 운동화다. 이한열은 선혈을 뿜으며 쓰러질 때 운동화 한 짝을 잃어 '모노산달로스'가 된다.

주인 잃은 신은 유예된 진실, 미완의 희망을 암시한다. 달마의 무덤 속에 덩그러니 남은 짚신 한 짝처럼. 역사는 진실의 회귀로써만 주인을 찾는다. 전두환 정권은 고문을 받다 죽은 박종철의 사인을 심장마비라고 속이고 고문 경찰관의 수를 축소하려 했다. 진실이 드러난 것은 검사ㆍ의사ㆍ기자ㆍ교도관 등 양심에 충실했던 의인들과 민주화 운동가들의 노력과 희생 덕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운동화에 발을 넣지 못했다. 우리의 내면은 달마의 무덤 속과 같으니 1987년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해 1월26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 추방을 위한 인권회복 미사'. 김수환 추기경이 강론한다.

"하느님께서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시니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하고 잡아떼며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창세기의 이 물음이 오늘 우리에게 던져지고 있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아들, 너희 제자,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탕하고 책상을 치자 억하고 쓰러졌으니 나는 모릅니다', (중략) '국가를 위해 일을 하다 보면, 실수로 희생될 수도 있는 것 아니오?', '그것은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라고 하면서 잡아떼고 있습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1987년 6월의 시민혁명은 청년 박종철과 이한열의 심장을 민주의 제단에 바친 다음의 일이었다. 이 희생 앞에 누가 지분을 주장하는가. '보수정권이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혔다'는 주장은 혀를 찰 가치도 없다. 박종철은 부산, 이한열은 화순의 아들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외치는 국민의 외침 속에 영남과 호남의 분별은 없었다. 사실이 이러하거늘 30년을 거슬러 누가 호남의 맹주를 입에 담는가. 영남을 기반 삼아 정치하겠다는 자 누구인가. 지역을 들먹여 표를 구하려는 자, 그들은 박종철과 이한열이 흘린 피를 밟고 서 있다. 추기경이 묻는다.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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