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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인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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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의 한국 지사장이 새로 부임해왔다. 유럽인이다. 낯선 한국 생활이 쉬울 리 없다. 매운 김치 맛에 몇 번이나 눈물을 떨궜고 폭탄주에 여러 번 혼쭐이 났다. 혈연ㆍ학연ㆍ지연은 아직도 아리송하다. 그보다 더 센 '흡연'이라는 인간관계는 도무지 이해불가다. 화룡점정은 연말 대기업 임원 인사다. 대기업 임원들의 세대교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그의 눈엔 이채롭기만 하다. '빨리빨리 문화'의 단면인가 싶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렇다면 나간 사람은?

바야흐로 대기업 연말 인사철이다. 삼성전자가 방아쇠를 당겼다. 지난해는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로 건너뛰었다. 올해는 대규모 이동이 불가피했다. 앞서 단행된 사장단 인사에서는 50대가 전면에 섰다. 이제는 '40대 상무'도 낯설지 않다. 현대자동차, SK, LG 등도 방향과 속도가 비슷하다. '굿바이 60대, 웰컴 40대.'
임원 승진은 가문의 영광이다. 승용차가 나오고 개인 사무실이 생긴다. 연봉 인상은 물론이다. 하지만 실상은 살벌하다. 1년마다 재계약해야 하는 시한부 인생이다. 계약 연장에 실패하면 그날로 실업자다. '60세 정년 의무'는 꿈 같은 얘기다. 그래서 앓는 연말 증후군. 스마트폰이 울리면 깜짝깜짝 놀란다. 혹시나 발신자가 사장일까봐. 사장이 차 한잔하자는 것은 십중팔구 '수고했다'는 뜻이다.

한국 지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은 그래서다. 대규모 승진 잔치에 가려진 '유감(遺憾)'이 눈에 밟히는 거다. "(유럽은) 주주총회를 거쳐야 하는 등기임원을 제외하고는 수시로 임원 인사를 한다. 인사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급변하는 시장에도 잘 대비할 수 있다." 그의 촌평이 매섭다. "한국은 4차 산업 혁명을 준비하면서 제조업 시절의 인사 제도를 고집하는 거 아닌가."

이방인의 눈에 비친 대규모 인사는 두 가지 문제로 귀결된다. 첫째, 인사를 전후해서 기업들이 일손을 놓는다. 11월부터는 사실상 업무가 멈춰선다. 인사 후에는 새로운 업무를 파악하느라 또다시 개점휴업이다. 이래저래 1년의 두세 달은 인사 후유증을 앓는다.
둘째, 경력 단절이다. 은퇴한 임원들의 나이는 기껏해야 50대 중후반. 한참 뛸 나이에 사회적 퇴물이 되고 만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노동의 상(象)을 평생 직장에서 평생 경력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은퇴자의 경험을 활용하는 묘안을 정부와 기업과 사회가 짜내야 한다는 주문이다.

연말 개점휴업을 계속 감내할 것인지, 은퇴자들의 경험을 썩힐 것인지. 대기업 인사 풍경이 던지는 숙제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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