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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의 윤리와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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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해변의 원색풍경으로 격정과 환상이 교차하는 세계로 우리를 불러낸다. 그 부름에 응답함이 휴가다. 직장과 일, 수많은 인간관계들에서 빚어지는 버겁고 숨 막히는 일상의 세계에서의 탈출은 인간의 오래된 로망이다.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게 하는 계절의 순환은 한마디로 이어달리기다. 봄에서 온 여름은 가을을 잉태한다. 여름은 열매 열음의 계절이고, 가을은 열매 맺음의 계절이다. 폭염과 장마를 몰고 온 계절일망정, 릴케(R. M. Rilke)의 말처럼 여름은 참으로 위대하다. 햇볕은 과실을 익게 하고 마지막 단맛을 포도열매 속에 스미게 한다. 대서(大暑)와 입추(立秋) 사이의 칠월 마지막 주에는 모두가 내실화(內實化)로 분주하다. 담 너머 대추가 메추리알 빛깔로 익어가고 벼이삭이 속을 채우느라 소리 없이 부산하고, 이제 봄에 꽃을 피웠던 신록의 초목들은 태양의 정수(精髓)를 꽃망울 속에 갈무리하기에 분주하다.

 인생도 자연처럼 일종의 순환과 성숙의 연속이다. 낮과 밤, 밀물과 썰물, 그리고 탄생과 죽음의 교차! 일할 때가 있고, 쉴 때가 있고, 머무를 때가 있고, 떠나야 할 때가 있다. 인생살이도 익숙함과 낯섦, 고요함과 방랑, 안주와 탈주(脫住)의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더 큰 만남과 성숙과 결실을 향해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 흔쾌히 떠나는 것이다. 철학자 마르셀(G. Marcel)은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즉,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 인간은 원래 성숙과 완성을 위해 '길을 가는 사람', 길 위의 존재인 '도상(途上)의 존재'이지 않은가!
 최근 욜로(Yolo)족이 급부상하고 있다. '욜로'라는 신조어는 2011년 래퍼 드레이크가 발표한 더 모토(The Motto)의 노래 가사에서 'You Only Live Once'가 등장했다. 욜로족은 한 번뿐인 인생임을 직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현재의 행복 추구를 가장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욜로족과 혼족은 현재 즐길 수 있는 일에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러한 시류 가운데 휴가마저도 욜로식, 나홀로식 양상으로 확산되면서 다른 사람들을 상관하지 않고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즐김을 극대화하면서 타인들의 존재를 도외시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탈윤리적 모습들이 하나의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저러한 나만의 격정과 환상에 이끌리게 하는 휴가의 기분(pathos)에 함몰될 때 우리가 흔히 놓치기 쉬운 것, 실수하기 쉬운 것이 휴가의 윤리와 품격이다. 인간은 개체로서 '홀로서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들과의 '모듬살이' 안에서만 진정한 성숙과 행복을 꾀할 수 있다. 이런 모듬살이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에티켓과 윤리이다. 기내(機內)에서 신발을 벗는 행위는 자신에게는 유쾌하지만, 타인들에게는 불쾌하다. 모처럼의 휴가 장소에서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지 않을 때 타인들에게 불쾌함과 불편함을 주게 마련이다. 자기의 기분만을 위해 윤리적 품격을 잃은 휴가는 타인들의 금쪽같은 휴가에 상처와 흠집을 내고 끝내 자신의 성숙을 방해하는 부메랑으로 다가온다. 물론 건강한 휴가윤리를 위해서는 개인의 품성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사회적 환경적 조건 개선도 수반돼야 할 것이다.

 윤리(倫理)란 일반적으로 행위의 지침이 되는 '사회적ㆍ 도덕적 규범'을 가리킨다. 그것은 영어 'ethics'와 독일어 'Ethik'의 어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에토스(Ethos)에서 유래한다. 에토스는 '인간이 거주해야 하는 근원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세계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들이 각자의 존재감과 고유한 본질을 찬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세계다. 이러한 세계에서 거주의 에토스는 서로 자신들의 고유한 본질을 발현하도록 배려하고 돕는 성숙한 마음이다. 윤리적 선한 행위란 타인들의 성숙과 행복을 돕는 행위이고, 악한 행위란 타인들의 성숙과 행복을 왜곡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모든 존재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본질을 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배려하는 윤리적 세계를 지향해야 한다.
 한 지역인이 다른 지역에서 휴가를 보낼 때, 그리고 문화가 다른 고장으로 휴가를 갈 때, 혹은 특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다른 종교권을 여행할 때 지녀야 할 타인들을 존중하는 자세와 보편적 윤리적 사고가 요청된다. 그것은 타인들에 대해 열려있는 '차이에 대한 감수성'과 '배려'와 '삼가는 자세'가 될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침해하지 않고, 나도 그들로부터 침해받지 않는 휴가를 향유할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윤리의식이 휴가를 떠날 때 반드시 챙겨가야 할 인간다운 성숙과 품격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모름지기 진정으로 유쾌하고 행복한 휴가는 타인들을 배려하는 윤리와 품격을 지닐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강학순 안양대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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