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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박원순 시장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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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은정 건설부동산부 부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 세상을 살다 보면 본의 아닌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애초 의심될 행동을 하지 말라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말이다. 최근 이 격언에 잘 맞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박 시장은 지난 26일 여의도ㆍ용산 통개발을 무기한 보류시켰다.

물론 이 결정이 쉽게 나온 것은 아니었다. 박 시장과 서울시 간부들은 보류 결정 발표 전날까지 회의를 열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회의에선 "(멈추면)서울 집값 폭등의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다" "(시장이)더 혼란스러울 수 있다"란 반대 의견과 "집값이 불안하니 멈추자"란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격론 속에 내린 결론은 "어쨌든 지금은 집값 안정화에 힘쓸 때"였다. 박 시장 입장에선 집값 폭등의 원인을 하나씩 따져보며 오해를 풀고 싶었겠지만, 그는 결국 '미친 집값'의 책임을 떠안아야 했다.
박 시장이 답답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집값 급등의 원인 중 하나가 여의도ㆍ용산 통개발이 사실이니 말이다. 더욱이 비이상적으로 흐르는 서울 부동산시장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했기에 굳이 박 시장을 위한 대변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후 강북 균형발전 계획까지 삐걱거리는 걸 보니 더는 침묵할 수 없었다.

서울, 특히 강남 집값은 왜 오르는가. 강남은 무엇보다 생활 인프라가 우수해 살기 좋다. 바둑판처럼 도로가 뚫려 있어 교통이 편하며 문화시설과 백화점, 대형마트 등의 편의시설이 즐비하다. 고교 8학군과 대치동 학원가 등 우수한 교육 여건도 갖췄다. 정부가 1970년대부터 허허벌판이던 강남에 교통, 주거, 교육 등의 인프라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한 결과다. 영동대로 지하 광역복합환승센터,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같은 최근 몇 년 새 서울에서 추진 중인 대형 개발사업 역시 강남이 중심이다. 그러는 동안 강북은 소외됐다. 최근에 '도시재생'을 키워드로 한 주거환경 개선 사업이 강북을 중심으로 시작됐지만 속도는 아주 더디다.

이런 와중에 박 시장이 '옥탑방 구상'으로 내놓은 강북 균형발전 정책은 솔깃했다. 일각에선 정치적 '쇼'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집중 투자를 통해 지금의 강남을 완성했듯 강북의 교통ㆍ주거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발표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출근길 따릉이와 버스, 지하철을 이용하며 겪었던 불편함과 집 근처에 가게가 없어 멀리 떨어진 마트까지 다닌 수고를 한 후 내놓은 구상이니 더 반가웠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문제가 터졌다. 옥탑방 구상이 부동산시장과 연결되면서 집값을 들썩이게 한 것이다. 서울 집값 안정이란 대의명분에서 본다면 이 역시 적폐로 몰릴 수 있다.
사실 여의도ㆍ용산 통개발은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갑자기 나온 정책이 아니다. 이미 2014년 수립된 '2030 서울도시계획'에 포함된 사업이었다. 통째 개발도 한꺼번에 철거해 짓겠다는 뜻이 아니라 조화로운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정부 역시 이를 모르진 않았지만 집값이 뛴다는 이유만으로 탐탁지 않아했다. 지금 상황이라면 강북 소외 지역에 추진할 개발 사업도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부동산은 다양한 변수가 얽힌 복잡한 방정식이다. 다각적 진단을 통한 종합대책을 세워도 대응하기 힘든데 한건 한건 터지는 사안에 개별 대응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더 꼬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금처럼 '기승전 집값'에 서울의 모든 현안이 압도당한다면 강남에서 촉발된 집값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기승전 집값'을 일단 피하자는 식으로 대응하기보단 강북 균형개발 사업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대비책을 꼼꼼히 세워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가서야 되겠는가.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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