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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길을 잃은 사람들

최종수정 2018.07.09 13:40 기사입력 2018.07.0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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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60~70대 나이로 보이는 노인은 버스에 오르면서부터 눈길을 끌었다. 일단 요금은 내지 않고 화난 얼굴로 노약자석을 향해 직진했고, 무임승차를 지적하는 버스 운전기사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더듬거리면서 빠르게, 반복적으로 그러나 정확히 어떤 얘기인지는 알기 어려운 자신의 말들로. "그렇게 살지 말라"는 정도만 귀에 들렸다.

행색은 깨끗해 떠돌아다니는 사정은 아닌 듯했고, 얼굴에 딱 맞는 안경도 쓰고 있었다. 보살핌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노인은 홀로 있었고, 자리에 앉았다 섰다 하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무척 공격적인 표정과 태도였던 탓에 승객들은 거리를 둔 채 그저 지켜만 봤다. 졸지에 원망의 대상이 된 기사 역시 더이상 요금 얘기를 꺼내지 않고 버스를 모는 데에 집중했다. 차 안에는 불안의 기운이 감돌았다.

보호자에게 인도해야 하는 게 아닐까, 돌발행동이라도 하면 어쩌지 잠시 고민하던 사이 남대문 시장에서 버스에 올랐던 그녀는 다음 역인 명동입구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버스의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기사에게 쉬지 않고 따져댔다. "그렇게 살지 말아라", "그렇게 살지 말아요".

행선지가 마침 같았던 터라 그 뒤를 따라 내렸다. 더 움직이지 못하고 노인의 발끝을 지켜봤다. 어디를 가는 걸까,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고 있을까. 잠시 뒤 '끼익',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뒤따르던 버스가 멈춰 섰고, 그 앞문으로 허겁지겁 백발의 노인이 뛰어내렸다. 구순은 족히 돼 보이는 할머니. 굽은 등을 일으키며 종종걸음을 치는 백발노인은 노여움 반 반가움 반인 표정으로 빽 소리를 질렀다. "왜 네 마음대로 타, 왜!".

거리에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여럿은 각자의 행선지로 흩어졌다. 보호가 필요해 보이는 누군가가 보호자를 만났으니, 그 정도면 행인들에게는 해피엔딩이었던 셈이다. 이후는 노인과 더 나이든 백발노인의 몫이었다. 그 뒤로 버스와 지하철에서 때때로 길 잃은, 혼자인 그리고 주변을 불안하게 하는 서울 난민을 마주칠 때마다 노인의 화난 목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그렇게 살지 말아요".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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