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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삼지마을 적송 이야기/고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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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에 삼지리라는 마을이 있는데요. 마을 회관 앞 공터에 키가 30m가 넘는 아름드리 적송이 서 있지요. 한데 그 100여 평 되는 공터가 원래는 마을의 개발 위원 땅이어서, 어느 날 인근 도회 사람에게 시가보다 두 배도 더 되는 1,000여 만 원에 팔렸는데요. 매입자는 애걸복걸 구입한 그 땅에 애초에 짓겠다던 전원주택은 짓지도 않고, 그만 석 달 만에 마을이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적송을 팔아넘기겠다는 것이었지요. 조경업자들과 기중기를 부르는 등 생난리를 치자 화들짝 놀란 마을 사람들이 회의를 했겠지요. 마을의 당산나무로 섬기는 적송이 사라지면 되겠느냐며 마을 답 한 단지를 9,000만 원에 팔아 적송이 서 있는 땅을 다시 샀는데요. 나무 값과 함께 1억을 내라는 그 사기꾼에게 사정사정하여 취득하였으니, 나무가 선 땅은 즉시 마을 공동 명의로 등기하고 나무는 영영 손 못 대게 군보호수로 지정을 받았답니다. 이것 참 일에 지쳐 탈진한 여름 한낮을 푸른 솔바람에 씻는 듯한 이야기네요.


■읽고 나면 괜히 빙긋 웃게 되는 시다. 물론 이 시를 읽고 나서 눈앞의 물욕에 당산나무까지 판 마을 개발 위원의 욕심을 나무랄 수도 있을 것이고, 애초의 약속 따윈 헌신짝처럼 저버린 땅 매입자를 "사기꾼"으로 몰아 타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번연히 눈뜨고 당한 마을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송을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순박한 마음을 눈여겨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금방 뭔가 그럴듯한 삶의 이법 한두 가지를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단 이 시를 재미있게 읽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큭큭거리며 웃는 그 마음속에 이미 저 모든 깨달음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사람 사는 동네란 어쩌면 욕심과 꾐과 어리석음과 순박함이 모두 모여야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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