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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웰컴 투 시월드

최종수정 2018.06.27 11:50 기사입력 2018.06.27 11:50

[여성칼럼] 웰컴 투 시월드

푹푹 찌는 요즘, 반가운 물놀이 세상 얘기냐고? 천만에. 시댁이라면 넌더리가 나 '시' 자가 붙은 시금치조차 먹지 않는다는 시집 얘기다.

여러 지인이 어울려 있는 단톡방에서 한 지인이 자녀의 결혼 소식을 알렸다. 대뜸 달린 축하 멘트가 바로 '웰컴 투 시(媤)월드'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둘러싼 고약한 우스갯소리가 하도 많아 그 멘트를 읽으며 나도 한참 낄낄거렸다. 그런데.

장성한 아들이 이제 결혼하겠다며 여자 친구를 집에 데려오고 양가 상견례를 거치면서 나에게도 시월드는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었다. 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하지만, 수년 전 딸의 결혼을 치러본 경험도 있는지라 아들이 여자 친구를 집에 소개했을 때만 해도 느긋하기만 하던 나였다.

'前(전)과 同(동)'.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게 아니었다. 딸의 결혼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설명할 수 없는 압박감이 점점 나를 옥죄었다. 분가해 살기로 했음에도 '명절에 집을 다니러 왔을 때 잠자리가 불편하면 안 될 텐데…'하면서 아들 방에 더블 침대를 들여놓아야 할지를 고민하고(우리 집은 지금도 좌식 생활을 한다), 거울 하나 없던 방에 화장대 둘 곳을 궁리하느라 몇 번씩 줄자를 들고 비좁은 방 안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평소 경제 관념이 투철하기로 소문난 친구가 아들 결혼을 앞두고 멀쩡한 목욕탕을 수리한다기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정작 내 차례가 되니 그게 아니다.
미래의 아들 내외가 머물 공간만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간 무심코 지나쳤던 가재도구며 살림살이가 하나둘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은 나 자신이었다. 아들에게 좋은 사람이 있으면 빨리 데려오라고 성화를 대기만 했을 뿐, 새 식구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기 다른 가정에서 자라나 사랑으로 하나가 돼 새 가정을 이루는 것은 결혼을 하는 신랑과 신부만이 아닌 것이다. 신랑의 부모도 확대가족의 일원으로서 새 가정을 꾸려나가야 한다.

결혼이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었던 우리의 옛 풍습에서는 신랑의 부모는 그저 며느리를 맞기만 하면 됐다. 그 집안의 문화를 바꿀 이유도 없고, 바꿀 필요도 없었다. 그저 시집 온 며느리만이 생소한 시댁의 문화를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입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식으로 참고 견디며 익히면 그만이었다. 요즘에야 며느리에게 시댁의 문화를 강요하는 일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너 따로, 우리 따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딸 같은 며느리'란? 오랜 시간 함께 지내오며 눈빛 하나로 교감할 수 있는 딸과 그 세월만큼 전혀 모르던 생소한 가정에서 자란 며느리를 동일시하는 것은 결혼 초기의 밀월기에나 가능할 뿐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났을 때, 처음에는 허니문이지만 이내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문화적 충격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적응이 되기도 하지만, 실망이 크면 그 문화를 떠나게 할 수도 있다.

인간에게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생식 작용만을 제외하고 친밀한 사이에도 거리가 존재한다. 나의 영역을 고수하느라 만원 엘리베이터 속에서도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정 안 되면 눈길이라도 천장으로 돌리지 않는가. 예비 며느리의 시월드 입성을 앞두고, 나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며느리를 '장성한 뒤 입양한 딸'로 여기기로 했다. 그녀의 자라온 과정을 존중하고, 새로운 가족으로 함께 써나갈 '우리의 역사'를 기대하며. 그리고 11월, 웨딩드레스의 그녀를 향해 당당히 외치리라.

"웰컴 투 아워 시월드!!"

홍은희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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