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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한 되/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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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한 되/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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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열댓 마지기 물려받은 호균 아재는 술만 취하면 김포가 금포 되는 날 타령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김포가 금포 되리라 믿는 이는 없었다. 허나 세월이 흐르니 김포가 금포 되기도 하였지만, 정작 주정뱅이 아재도 그의 논도 다 사라진 뒤였다.
또 마을선 영 기약 없이 빠져나가는 말장난으로 공항에 배 들어오면, 하는 말이 있었다. 돈 갚아, 하면 공항에 배 들어오면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니 정말 공항 활주로 곁으로 운하가 뚫리고 벌판을 거슬러 배가 들어오고야 말았다.
세월이란 이렇게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전해 주기도 한다. 세월 앞에 장사가 있을진 몰라도 장사를 비껴갈 수는 없다. 뿐이랴.

침을 놓는 이, 지붕 잘 올리는 이, 상쇠만 죽어라 두드리는 이, 염을 하는 이, 대소사에서 돼지 멱을 기가 막히게 따는 이, 고장 난 기계들 손을 잘 보는 이, 우물 팔 때 땅속으로 들어가 남포에 불을 댕기고 잽싸게 기어 나오는 이, 또 그걸 곁에서 지키다 달아나는 간 큰 이, 조반부터 점방을 들어서던 주정뱅이, 반쯤 나간 정신 영 돌아오지 않는 이, 삼팔따라지, 선거 때면 나서는 이, 울긋불긋 곤당골네.
몇 안 되는 가호엔 이들 말고도 조 한 되 정도의 뭔가가 오밀조밀 쟁여 있었다. 듬성듬성 자리를 비운 이(齒)의 부재. 그들은 어느 지붕 위로 날아가 유치가 되었을까.


■낯익은 시다. 그러나 부디 바라건대 오해하지는 마시길. 다만 시를 잇고 맺어 가는 길목들과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좀 친숙해 보인다는 맥락에서 함부로 쓴 말이지 그를 넘어선 뜻은 전혀 없으니. 그건 그렇고 어쩌면 그래서 이 시는 우리가 이미 다 건너왔다고 착각하고 있는 저 비탈지고 울퉁불퉁한 자드락길로 다시 우리를 순식간에 데려다 놓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길 끝엔 여전한, 아니 예전보다 더 황폐하고 몹쓸 곳이 되어 버린 고향이 있다. "듬성듬성 자리를 비운" 이들이 "부재"하는 곳. 어라, 그런데, '이'가 '사람'이 아니라 '이(齒)'라니! 그것도 '젖니'라니! 때론 유치(幼稚)해 보이기도 했지만 '젖니' 같았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러고 보니 이 시는 시가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시가 시작되고 있구나. 앞에 적은 말들은 모두 헛소리였던 셈.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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