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열댓 마지기 물려받은 호균 아재는 술만 취하면 김포가 금포 되는 날 타령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김포가 금포 되리라 믿는 이는 없었다. 허나 세월이 흐르니 김포가 금포 되기도 하였지만, 정작 주정뱅이 아재도 그의 논도 다 사라진 뒤였다.
세월이란 이렇게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전해 주기도 한다. 세월 앞에 장사가 있을진 몰라도 장사를 비껴갈 수는 없다. 뿐이랴.
침을 놓는 이, 지붕 잘 올리는 이, 상쇠만 죽어라 두드리는 이, 염을 하는 이, 대소사에서 돼지 멱을 기가 막히게 따는 이, 고장 난 기계들 손을 잘 보는 이, 우물 팔 때 땅속으로 들어가 남포에 불을 댕기고 잽싸게 기어 나오는 이, 또 그걸 곁에서 지키다 달아나는 간 큰 이, 조반부터 점방을 들어서던 주정뱅이, 반쯤 나간 정신 영 돌아오지 않는 이, 삼팔따라지, 선거 때면 나서는 이, 울긋불긋 곤당골네.
몇 안 되는 가호엔 이들 말고도 조 한 되 정도의 뭔가가 오밀조밀 쟁여 있었다. 듬성듬성 자리를 비운 이(齒)의 부재. 그들은 어느 지붕 위로 날아가 유치가 되었을까.
■낯익은 시다. 그러나 부디 바라건대 오해하지는 마시길. 다만 시를 잇고 맺어 가는 길목들과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좀 친숙해 보인다는 맥락에서 함부로 쓴 말이지 그를 넘어선 뜻은 전혀 없으니. 그건 그렇고 어쩌면 그래서 이 시는 우리가 이미 다 건너왔다고 착각하고 있는 저 비탈지고 울퉁불퉁한 자드락길로 다시 우리를 순식간에 데려다 놓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길 끝엔 여전한, 아니 예전보다 더 황폐하고 몹쓸 곳이 되어 버린 고향이 있다. "듬성듬성 자리를 비운" 이들이 "부재"하는 곳. 어라, 그런데, '이'가 '사람'이 아니라 '이(齒)'라니! 그것도 '젖니'라니! 때론 유치(幼稚)해 보이기도 했지만 '젖니' 같았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러고 보니 이 시는 시가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시가 시작되고 있구나. 앞에 적은 말들은 모두 헛소리였던 셈. 채상우 시인
꼭 봐야할 주요뉴스
성인 절반 "어버이날 '빨간날'로 해 주세요"…60대...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