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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만만(慢慢)하게

최종수정 2018.05.15 16:13 기사입력 2018.05.1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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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기 싫어. 싫단 말여. 살고 싶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었던 장면. 언제 어디서든 심장을 강타하는 슬픈 트라우마.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기억한다. 죽음의 공포는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할머니의 외침으로.

일주일 정도 잠을 설쳤던가. 눈을 감으면, 그러니까 죽으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내 삶과 같이 끝나는 걸까. 내가 사라지면 잠시 슬프겠지만 변하는 건 없겠지. 지구는 돌겠지. 잊히겠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겠지. 엄마는 어린 애가 뭘 그런 걸 벌써부터 고민하느냐는 눈치였다. 외로웠다.

한 번 사는 인생, 무상을 느낀 건 이맘때부터다. 애늙은이 소리를 들은 것도 비슷한 무렵 같다. 각박하게 살 이유가 없어졌다. 죽으면 끝인데. 행복하게 즐겁게 좋은 사람들과 사랑하며 살기에도 너무나 짧은 인생. 입버릇처럼 뱉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로 장면을 옮긴다.
"나 만 원만."

기숙사 생활을 하는 딸을 보러 온 엄마에게 돈 만 원 받기가 미안했다. 벌여 놓은 사업이 잘 안 됐던 때다. 가정 형편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눈치 챈 지 오래다. 며칠 뒤 또 기숙사를 찾은 엄마는 '미안해 하는 네 표정이 너무 가슴 아팠다'면서 쪽지를 남겼다. 목구멍에 걸리는 뜨거운 그것. 물질적인 모든 것에 가치를 두지 않기 시작한 것은 이맘때로 기억한다. 자연스레 소유에 대한 욕구도 사라졌다. 갖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졌다.

아는 사람은 아는 내 삶의 두 번의 터닝 포인트. 오늘 다시금 되뇌는 것은 여전히 각박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다.

장면은 다시 중국 베이징. 가장 마음에 든 것을 꼽으라면 만만디(慢慢的) 문화다. 내가 생각하는 만만디는 느림의 미학이다. 느리다는 것을 속도의 개념으로만 이해해서는 오산이다. 느리지만 신중하고 정확하며 빠른 것보다 오히려 더 빠른 게 중국의 만만디다.

베이징 생활 2년을 뒤로 하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지 꼬박 3주. 귀국의 기쁨을 만끽할 틈도 없이 쳇바퀴 삶이 다시 돈다. 두려운 것은 어느새 적응한 나 자신이다.

산업부 김혜원 기자 kimhye@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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