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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삶의 꼴

최종수정 2018.05.08 11:50 기사입력 2018.05.08 11:50

김영주 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

나의 어머니는 사람을 볼 때 관상, 특히 귀 생김새에 유난히 집착하신다. 둥글둥글한 모양, 적당한 크기에 귓불이 두툼한 사람은 복스럽다며 무척이나 좋아하시는 반면 귀가 작고 뾰족하며 귓불이 얇은 소위 칼귀를 가진 사람은 선호하지 않으신다. 귀가 유난히 잘 생기셨다던 당신의 아버지, 즉 나의 외조부에게서 받은 영향이 큰 것 같다.

외조부는 요즘으로 말하면 이른바 재벌가에 속하는 대단한 만석꾼의 자손이었다. 손이 귀한 집안의 아들이다 보니 그 존재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인물이 출중한 데다 성품까지 온화하고 가정적이셨던 외조부는 일제 강점기에 어려운 주변 사람들을 소리 없이 돕는 한편 사재를 털어가며 문화재를 지키고 청년을 교육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셨다. 그야말로 노블레스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삶을 사신 분이다.

하지만 외조부는 이 과정에서 겪은 맘고생과 돈고생으로 스트레스성 질환이 생겨 고생하시다가 환갑도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백 세까지 무병장수하면서 만복을 누리셔야 마땅할 만큼 귀가 잘 생기셨던 외조부는 비록 일찍 세상을 뜨셨지만, 자손들이 각자 분야에서 성실하고 조용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분의 복이자 덕이 아닌가 싶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나 생김새 또는 됨됨이를 뜻하는 용어로 '꼴'이라는 말을 쓴다. 본래 부정적 의미가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하는 짓이나 모습이 몹시 이상하거나 우스워 그냥 보아 넘기기가 어려움을 뜻하는 '꼬락서니'로 낮춰 이해되고 있다.

관상학을 다룬 허영만 화백의 작품 '꼴'을 보면, 사람의 얼굴뿐 아니라 언행을 통해서도 그 사람의 귀하고 천함이 드러난다고 하면서 여섯 종류의 귀하지 않은 꼴을 제시한다. 이 중 1천(賤)은 남들이 흉보는지 욕하는지 모르고 떠드는 수치를 모르는 자다. 2천(賤)은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스스로 떠들고 다니는 자, 3천(賤)은 옆 사람은 곤란을 겪는데 웃으며 딴청 피우는 어리석은 자, 4천(賤)은 무슨 일이든 확실하지 않고 나갈지 들어올지를 모르는 자, 5천(賤)은 남이 안 되기를 바라면서 헐뜯는 자, 6천(賤)은 자기 자랑 할 건 없으니까 남을 팔아서 돋보이려는 자다.
여섯 가지 꼴 중 어느 한 가지에도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것은 비록 천한 꼴을 가진 사람이라도 스스로 고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생각을 하는 자체만으로도 혼탁한 기운이 없어지고 맑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항공사 총수 일가가 자택 리모델링을 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공간의 꼴을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 한옥을 지을 때 적절한 공간 규격을 산정하기 위해 적용한 척도 기준이 있었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이 신장에 비해 너무 크고 높으면 공간 사용자가 기고만장해 쓸데없이 우쭐하고 뽐내게 된다고 한다. 반면 너무 낮으면 기가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고 눌려 공간 사용자가 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집이라는 생활공간이 자신의 부나 능력을 과시하는 대상이기보다는 사용자의 꼴에 맞춘 합리적인 공간이 돼야 함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누구에게나 타고난 얼굴의 생김새처럼 겉으로 보이는 꼴이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 심성이라는 내면적인 꼴일 것이다. 어느 철학 교수가 말했듯이 모든 사람이 잘 살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왜 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의 모습에 부합하는 진정한 삶의 꼴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김영주 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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