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그 기억이 있다. 미완의 혁명으로 기억되지만 1987년 6월 대항쟁이 그러하고, 촛불로 하나 되었던 2016년 겨울의 기억, 그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목소리와 몸의 기억들이 있다.
일주일 전 4월 3일, 대통령은 제주도 4.3 희생자 추모일 추념사에서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고 물었다. 무려 70년 동안 유족들이 속울음으로 되물은 질문이 이 땅의 대통령 목소리로 나온 것은 실로 엄청난 변화다.
한 시인은 제주의 바람을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이종형)이라고 한 바 있는데, 대통령이 봄을 빼앗긴 제주의 70년을 회억하고 목소리를 낸 것 자체가 죽은 사내들과 아내들과 아이들의 울음을 대신 울어준 것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실로 큰 위로다.
40년 전에 소설 <순이 삼촌>으로 제주의 4.3을 처음 알린 작가 현기영은 "학살보다 무서운 것은 망각"이라고 했다. 과거를 회억(回憶)하는 것은 갈등이나 투쟁의 씨앗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억압되고 억눌려 있던 작은 진실들을 회복하여 우리 모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평화로 가는 첫 걸음이다. 우리 역사에서 수없이 되풀이 되어온 이념 싸움, 적대와 증오를 거두고 공존을 위한 터를 만들려면 더 적극적인 애도와 상처의 치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계속 기억하고 기록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망각과의 싸움을 통해 치유 받는 쪽은 피해자만이 아니다. 불편한 일에 "기억 안 나요"라며 수없이 변명하고 회피해온 우리 자신을 보더라도, 기억하고 말하는 행위는 진정한 자기 모습을 대면하는 일이다.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첫 단추도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와 몸의 에너지는 빛보다 멀리 간다.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입이 없었던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독다독 보살피고 응시하고 회복할 때다. 아픔 많은 4월에 기적처럼 꽃이 피었듯, 이 땅의 봄을 부르는 크고 작은 목소리들에 희망을 품어본다.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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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빼려고 맞았는데 아이가 생겼어요"…난리난 '...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