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들을 부화시켜 마당에 놓아먹였고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얼룩 염소 한 마리를 사다가 젖을 짜 먹였다
가만히 앉아 무슨 생각인가를 한없이 하는 사람이었다
염소가 풀을 다 뜯은 후에도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언덕의 풀처럼 나지막하고 바람에 잘 쓸리는 사람이었다
죽은 닭은 잘 만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갓 낳은 달걀과
마악 짜낸 염소젖,
생전에 그가 식구들에게 건네준 전부였다
그보다 따뜻한 것을 알지 못한다
■참 따스한 시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 한편이 허전하기도 하고 또한 아릿하기도 하다. 3연과 4연 때문이다. "염소가 언덕에서 풀을 뜯을 때" 그는 "가만히 앉아 무슨 생각"을 그토록 "한없이" 오래 했을까, 그리고 "염소가 풀을 다 뜯은 후에도" 그는 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한참을 "귀 기울"이며 머물러 있었을까. 그 구체적인 사연이야 나는 모른다. 다만 그 또한 아름다운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엔 너무 늦어 버렸고 그러나 그보다 소중한 가족이 생겼고 그래서 행복했고 슬펐고 걱정했고 그러다 저녁 해를 바라보며 아득해졌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그렇고 당신이 지금 그러하듯이. 우리는 그렇게 평생을 다해 하루하루를 건너 사람의 일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저 보잘것없어 보이는 "갓 낳은 달걀"과 "마악 짜낸 염소젖"의 따뜻함은 어느 위인이 이룬 업적보다도 숭고하고 경이롭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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