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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걸려 있다는 것/문숙

최종수정 2018.03.08 09:54 기사입력 2018.03.08 09:54

[오후 한 詩]걸려 있다는 것/문숙

나뭇가지 모양의 바나나 걸이를 샀다
바나나를 어디엔가 걸어 두면 싱싱하게 보존된다고 한다
아직도 자기가 나무에 달려 있는 줄 알고 꿈을 꾸기 때문이라는데
바닥에 두면 나무에서 떨어진 줄 알아 빨리 썩는다는 것이다

어느 해외 입양아가 파양당하고 청년이 되어 친부모를 찾아왔다가
끝내 못 찾고 고시원에서 고독사했다는 소식이다
그에게는 부모도 자식도 아내도 없어 매달릴 가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가지에서 떨어진 열매라 생각해 버린 것이다

아이들도 다 자라서 내 곁을 떠나고
일생 나를 가슴에 붙이고 사셨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하고 싶은 일이 없어졌다
나도 지금 꿈을 잃은 바나나다


■'고독사'라는 말, 참 끔찍하지 않은가. 주로 이 단어는 혼자 살다가 사망한 경우 즉 '고독하게' 죽은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시에서 헤아리고 있는 바는 고독해서 죽는 경우다. 얼마나 외로우면 그 때문에 정말로 죽을 수도 있는 걸까.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둘러보면 고독사가 비단 특정인의 비참일까 싶기도 하다. 좀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근래 우리의 생활양식을 이끌고 있는 단어인 '욜로(YOLO)'는 이에 대한 최신 증거인 듯하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당신의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축약한 단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즐기는 삶의 방식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은 실은 소비자본주의가 극도로 파편화된 개인을 소비 주체로 재생산하기 위해 다시 호출한 스노비즘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음식과 여행과 인스타그램이 자기 기획의 충분하고도 새로운 전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텅 비었을 따름이다. 물론 이 암담하기 짝이 없는 공허를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독사와 바로 맞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꿈을 잃은 바나나"인 건 사실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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