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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연금생활자와 그의 아들/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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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하급 공무원이었다.

사람들은 비웃으면서도
공무원이 되려고 한다.
그것은 시시한 일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지만,
아버지는 그 시시한 일로 가족을 먹여 살리셨다.
실패의 관록을 차곡차곡 쌓아 가면서
마지막엔 늙은 연금생활자가 되어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계셨다.

어떤 이해도 없이
어떤 이해도 없이

앉아 있을 때,
모든 것이 허사였다는 게 드러났는데도
아버지는 무엇을 보면서 저렇게 웃고 계실까.
마음은 자꾸 성을 낸다,
사실은 자신을 혐오하면서.


■아버지가 웃는다. 자꾸 웃는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웃는다. 일일 드라마를 보면서 웃는다. 회장의 며느리의 며느리가 실은 며느리가 버렸던 딸이라는데도 놀라지 않고 웃는다. 뉴스를 보면서도 웃는다. 화를 내지도 혀를 차지도 않으면서 웃는다. 전국노래자랑을 보면서 웃는다. 각설이 분장을 하고 대놓고 웃기게 노래를 부르는 출연자를 보면서 그저 웃는다. 웃음기 하나 없이 웃기만 한다. 나를 보고도 웃는다. 걱정도 잔소리도 없이 웃는다. "아버지는 무엇을 보면서 저렇게 웃고 계실까." 늙은 아버지가 웃는다. 하냥 웃는다. 그렇게 어제처럼 아버지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한생이 다만 맥없이 시시하게 웃고만 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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