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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정선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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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지난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현장. 하얀 도포(道袍)에 갓을 쓰고 등장한 소리꾼의 애절한 목소리에 시선이 집중됐다. 주인공은 '정선아리랑' 창기능 보유자 김남기(81)씨. 김씨는 읊조리듯 잔잔하게 전개하는 노래에 한국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았다.
김씨의 소리가 깊이를 지닌 것은 삶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학교에 갈 꿈은 일찌감치 접은 김씨. 어린 농사꾼의 고된 삶을 달래준 것은 정선아리랑이었다. 열두살 때부터 정선아리랑을 입에 달고 살았던 그는 소리 재주로 이름을 알렸다.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성대하게 펼쳐지고 있다. 2018.2.9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성대하게 펼쳐지고 있다. 20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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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나창주씨, 최봉출씨 등 정선 대표 소리꾼의 제자가 되면서 토종 소리의 맥을 이을 인물로 키워졌다. 특유의 사투리가 배어 있는 김씨의 음색은 투박하면서도 살가운 정선아리랑 정서를 대변하는데 적임이었다.

정선아리랑은 이른바 '아라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5500개가 넘는 가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 1200개가 발굴돼 전해지고 있다. 세계 단일 민요 중 가장 많은 가사를 지닌 노래가 바로 정선아리랑이다. 1971년 강원도 무형문화제 1호로 지정됐고 2012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정선아리랑은 600년 전인 조선 초기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고려왕조를 섬기며 충절을 맹세했던 선비들의 불사이군(不事二君) 정신이 바탕이 된 노래다. 벼슬을 등지고 평생 산나물을 뜯어가며 살아가던 선비들은 가족과 고향을 떠난 애절한 삶을 한시(漢詩)에 담았고 그 내용이 구전(口傳)되는 과정에서 지금의 정선아리랑으로 발전했다.

평창 올림픽 무대에 정선아리랑이 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정선아리랑은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이들의 사연이 담긴 가장 한국적인 노래다. 한반도 대전환의 시대를 앞두고 남과 북의 최고위급 인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울려 퍼진 정선아리랑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정선아리랑이 둘로 갈라진 남과 북이 정서적 교감을 이루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만 있다면…. 도포자락 휘날리며 등장한 팔순 노인은 평창 올림픽 개막식의 숨은 주인공으로 세계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지 않겠는가.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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