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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카루스와 하인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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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카루스와 하인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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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은 없다. 농부는 밭일을 하고, 목동은 양을 치며 멀거니 하늘을 쳐다본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인 듯 평온하다. 그런데 저 하늘 높이 날개 달린 남자가 눈에 띈다.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보인다. 하늘에 홀로 떠 있는 그는 다이달로스다.


다이달로스는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에 여전히 하늘을 날 수 있다. 자신의 아들 이카루스가 옆에 없다는 걸 깨닫고는 뒤늦게 하늘에서 아들을 찾고 있는 것이다. 벨기에 브뤼셀의 왕립미술관에 전시된 피터르 브뤼헐의 '이카루스의 추억'(1590~1595년ㆍ목판에 유채)은 재앙을 목전에 둔 나약한 삶의 단면을 이렇듯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큰 사고와 불행은 매번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참사를, 두 눈 멀쩡히 뜨고 봐야 하는 국민들은 치를 떨어야 한다. 관련자들의 무책임한 행태, 기관의 미숙한 초동 대처와 지휘 체계에 분노한다. 안전보다 돈을 추구하는 사회 풍조와 느슨한 법제도, 공무원의 유착 관계에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그런데 큰 사고와 작은 사고, 징후들 간의 인과관계를 따져 90여 년 전 이미 연구한 사람이 있다. 바로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다.


그는 미국 여행자보험회사에 근무하면서 사고 통계를 접했다. 이후 사고의 인과관계를 계량적으로 분석했다. 한 번의 중상이 발생하기 전 29번의 경상이 있었고 앞서 부상이 발생하지 않은 300번의 가벼운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대 29대 300'이란 수치는 그렇게 '하인리히의 법칙'으로 정립됐다.


하인리히는 산업재해를 연구해 '2대 10대 88'이란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88%는 인간의 불안전한 행위 탓이고, 10%는 기계적ㆍ신체적 상태 때문에, 나머지 2%는 불가항력적 이유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겪어봐야 안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냉동물류창고 화재, 세월호 참사뿐인가.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는 최근 제천ㆍ밀양 참사로 다시 불거졌다. 안전 불감증, 늑장대응, 인력과 예산의 부족, 매뉴얼 부재, 사후 약방문 같은 말들은 이제 번잡할 따름이다. 정치적 적폐청산이 아닌 사회개혁의 지렛대 확보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주장이 일견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결함의 반복을 막기 위해 '도미노 이론'과 '최소율의 법칙'을 내세우곤 한다. 전자는 잠재된 도미노 같은 연결고리를 과감히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후자는 나무 물통의 가장 낮은 조각의 높이가 전체 물의 양을 결정하듯 전반적인 수준을 높이라는 주문이다. 첨단 기술의 발달로 우리 사회가 네트워크화 되면서 완벽한 사회로 가는 듯 보이지만 외견상 완벽해 보이는 사회도 실은 치명적인 약점 하나로 붕괴될 수 있다.


2001년 9월11일 오전 세계무역센터를 덮친 테러 당시, 이 건물에 본사를 둔 모건스탠리 임직원 2687명과 방문객 250명의 목숨을 구한 건 '고집불통'의 안전요원 한 사람이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출신인 안전책임자 릭 레스콜라는 1993년 이 건물 지하에서 일어난 무슬림의 폭탄테러를 잊지 않고 있었다. 금융회사의 특성을 무시하면서까지 평소 실전과 다름없는 대피 훈련을 강행했고, 사고 당일 빛을 발했다.


그는 당국의 "대기하라"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임직원들에게 매뉴얼대로 대피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대표적인 위기 관리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다만 레스콜라 자신은 마지막까지 다른 사람들의 대피를 돕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책임감과 명민함만이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의 해법이 아닐까.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성공이란 열정을 간직한 채 실패와 실패 사이를 건너는 능력이라고….


오상도 정치부 부장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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