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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포럼]주택(house)보다 집(home)

최종수정 2017.12.26 10:40 기사입력 2017.12.26 10:40

김영주 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
김영주 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

사회가 아무리 급변해도 먹고 입는 문제와 함께 주거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조건의 하나다. 그러나 주거의 대한 의미는 남성과 여성 간에 다르게 나타난다. 여성들은 주거를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정서적 상징물이자 외부로부터의 심리적 보호막인 집(home)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은 데 비해, 남성은 단순히 잠을 자고 쉬기 위한 물리적 장소로서의 주택(house)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심리학적 측면에서 볼 때 남성은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집에 대한 감정적인 애착심이 희박해지면서 보다 중립적이고 물리적인 의미를 부여하지만, 여성은 정서적 차원에서 집을 보다 중요한 생활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거에 대한 의미와 인식ㆍ태도의 성별 차이는 사회의 특성에 따라 설명되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처럼 집단의 이상이나 가치체계가 중시되던 폐쇄적인 전통사회에서는 남녀가 확실히 차별돼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돼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회에서 남성은 적극적이고 집단 중심적인 반면, 여성은 낮은 지위와 역할을 지닌 소극적이며 자녀 중심적인 존재로 간주됨에 따라 주거공간은 명확히 분리됐고 성차별이 나타났다. 한편 프라이버시와 자유가 중시되는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생활의 중요성이 인지돼 주거공간 내에서도 공간적인 남녀 차별은 감소하고 가족 모두가 평등하게 교류하고 화합할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이 인식됐다.

주거에 대한 성별 차이를 산업혁명 전후로 구분해 설명하기도 한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성별 구분 없이 모든 가족이 집안에서 일을 했다. 산업혁명 이후 남녀 역할과 활동 영역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주거는 수동적인 여성상과 정서적 따뜻함ㆍ도덕성과 결합된 개념으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 교외의 단독주택이 중산층의 가장 이상적인 주거유형으로 부상하면서, 여성은 집안에 머무르며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가꾸는데 전념하는 사적 생활을 하는 것이 주거 규범으로 자리 잡았고 남성과 더욱 분리된 생활을 하게 됐다.

이후 여성의 사회활동이 증가하면서 주거생활과 가사노동의 효율성에 대한 관심과 기능적 건축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이에 대응하여 나타난 대표적인 공간의 변화가 거실ㆍ식당ㆍ부엌과 다른 공동실을 통합해 구성하는 개방형 주거공간이다. 효율적인 공간계획과 편리한 가전제품 등 도입으로 남성이 가사에 참여하는 비중이 과거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이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시간이 증가한 만큼 남성이 가사일에 참여하는 시간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도 일상적인 가사와 자녀양육을 포함한 과다한 노동은 여성의 몫이다.

행복감 또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인으로 자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자아수용감과 삶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살아가는 능력으로써 환경지배력을 꼽는다. 서양에서는 행복감과 삶의 만족도에 대한 성별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은 반면 국내의 연구들에서는 일괄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게 보고되는데 이는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에 비해 자아수용감이나 환경지배력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유연한 사고를 필요로 한다. 단순히 물질적 자산이자 기능적 공간으로써 주택(house)이 아니라, 사는 사람의 정서와 추억이 깃들고 남성성과 여성성이 균형 있게 상호보완을 이루는 집(home)이 됐을 때 비로소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 주거공간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그 안에서의 삶의 질도 높아질 수 있다.

김영주 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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