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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대국(大國) 중국의 길

최종수정 2017.12.04 10:33 기사입력 2017.12.04 10:33

오영호 전 코트라 사장
나름 회복됐다는 한중(韓中) 관계가 우리 입장에서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촉발된 '사드 정국'이 끝났다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8개월 만에 재개된 중국인의 한국 단체관광도 중국 일부 지역에서만 풀렸고,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의 호텔과 면세점 이용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이쯤 되면 양국 관계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의문이 든다.

한중 수교 4반세기 동안 일어난 교역, 투자, 인적 교류와 같은 몇 가지 변화만 간략하게 일별해도 양국이 얼마나 밀착해왔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기에는 25년이라는 시간이 짧을지 몰라도 그간 쌓아올린 성과는 갈등을 드러내놓고 논의할 만큼 탄탄해졌다. 실제로 얼마 전 베트남 다낭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한중 정상이 만나면서 사드 문제가 봉합되기 시작했다. 당시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의 총서기 연임 축전에 감사하면서 중국의 사회·경제 개혁이 한중 협력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달에는 문 대통령이 국빈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이렇게 양국 정상이 자주 회동하다 보면 상호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관계개선의 흐름도 빨라질 것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양국 국민의 감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잊을 만하면 중국에서 '혐한' 바람이 부는 판에 이런 식이면 설령 한반도에 훈풍이 불어도 두 나라 국민의 마음이 쉽게 풀릴지 의문이다. 지난 2월, 중국 '환구시보'는 '사드 부지를 제공한다면 롯데는 중국을 떠나라'는 사설을 실은 데 이어 '롯데가 사드 부지를 제공할 경우 불매운동에 나설 것'이라는 응답이 95.3%에 달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했고,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우리 국민은 즉각 반발했다. 이쯤 되면 지난 2010년의 데자뷔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천안함 침몰 사건에 따른 서해 한미 군사훈련으로 양국 간 긴장이 조성되자 환구시보가 중국 네티즌을 상대로 조사했고 94.5%가 '한국을 힘으로 제압해야 한다'고 답했다. 강경론이 폭주하다 보니 '반한 감정의 표출은 중국의 장기 이익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 같은 이성적인 목소리는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사드 정국'을 계기로 한중 관계에서는 속도보다 무게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또다시 확인됐다. 단기적인 입장차와 오해를 메우고 풀 만큼 꾸준히 신뢰를 다지는 일이 그것이다. 이런 일은 운신의 폭이 좁은 정부보다 민간에서 주도하는 것이 좋다. 재계, 문화계 인사와 전직 관료들이 나서서 대화를 나누고 공동사업을 모색해야 한다. 기업과 경제단체간 협력을 강화하고, 대학 교류도 제조·마케팅 기반 구축에 도움이 되도록 인문·사회에서 이공ㆍ경영 같은 실용학문 쪽으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 다음 세대를 책임질 젊은이들끼리 만나 긴 시간 속에서 감성을 공유하고 키워나가게 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중국도 덩치만 큰 대국이 아니라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어떻게 실천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부 주도로 '한한령'을 내려놓고 결정적일 때 책임을 부인하는 모습은 옹졸하게 비쳐질 뿐이다. 우리 외교부장관이 표명한 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 불가,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 등 '3불(不)'의 이행을 집요하게 언급하고 중국 언론은 한 술 더 떠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사용을 제한하는 '1한(限)'까지 요구하는 것은 결코 대국의 풍모가 아니다. 중국은 이행 요구를 그치고, 한국은 '3불'을 지키면 그뿐이다. 나아가 문 대통령이 제안한 시진핑 주석의 평창 동계올림픽 방문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하다. 시 주석이 차기 동계올림픽 개최국 수반자격으로 평창에 오면 많은 중국인이 뒤따르고 북한의 참석 가능성도 생겨 한중관계의 진일보와 동북아평화구축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중국이 원하는 제재와 압박이 아닌 방법으로 북한 문제를 풀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미국도 부러워할 만한 카드다. 이것이 바로 대국의 모습이자 글로벌 스탠더드를 아는 나라의 길이다.
오영호 전 KOTRA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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