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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세제 조화

최종수정 2017.10.12 15:29 기사입력 2017.10.12 10:50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
중국 랴오둥반도의 끝 뤼순(旅順)은 천혜의 군항이다. 항구 대부분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폭풍은 물론 적의 포격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한다. 지난주 도시 한복판 백옥산(白玉山)에서 살피니 군함은 물론 잠수함조차도 훔쳐보려면 보라는 듯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역사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1894년 청일전쟁 및 1904년 러일전쟁의 치열한 전장이었다. 특히 뤼순감옥은 한민족에게 아픈 상처를 안긴다. 그곳에서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단재 신채호, 우당 이회영 등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순국했다.

대한제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였던 1909년 안중근은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체포돼 이듬해 3월 순국했다. 그는 감옥에서 저술한 책 '동양평화론'에서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고등법원장과의 면담 기록인 '청취서'에 소개되어 있음)을 제시했다. 그 핵심 내용은 공동화폐 발행, 공동 개발은행 설립, 평화회의기구 구성 등이다.

세계 1, 2차 대전의 전쟁터였던 유럽 국가들이 전쟁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1993년 만든 유럽연합(EU)의 작동 체계를 이미 팔십 년 전 조선의 서른한 살 청년이 차디찬 감옥에서 제시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경탄스럽다.

뤼순은 한때 고구려 영토였다. 근처에 양만춘 장군이 당나라 태종의 침략을 물리친 안시성이 있고, 그 연장선에 부여성도 보인다. 이 선을 이으면 고구려가 631년에 축조한 천리장성이 된다. 이는 당시 고구려와 당나라의 국경선이었다.
뤼순감옥에서 안중근은 조선의 기막힌 역사를 꿰뚫어보았고, 아시아에서 열강들이 치고받는 싸움의 결과를 미리 알았다. 그가 내린 결론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였다. 이런 사고를 집대성한 것이 동양평화론이다.

그가 모색한 평화는 조선만 잘 살기 위한 '폐쇄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벽을 뛰어넘어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열린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제안을 거절한 일본은 35년 뒤 철저히 망했다. 그리고 2000만 이상의 아시아 민중도 희생당했다.

지금 트럼프와 김정은의 거친 말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이를 애써 무시하거나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15만 명 이상의 미국 국적 보유자가 남한에 거주하고, 수백억 달러의 미국 자본이 한국에 투자하고 있는 이상, 트럼프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한반도에 포탄을 퍼 부을 수 없을 것이다(아니 없어야 한다). 어찌 보면 그들은 전쟁방지용 인질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남북 사이의 교류를 제한하고 차단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근시안적인 통일정책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그렇다고 북한을 완벽하게 무찌를 실력도 갖추지도 못했다). 안중근의 평화론은 당연 자주국방에 기초한다.

EU는 정치적 평화체제를 보다 견고히 하기 위해 세제의 조화도 꾀했다. 역내거래에 대한 관세 철폐와 부가가치세제의 조화(harmonization)를 통해 물적 교류의 걸림돌을 제거했다. 프랑스 사업가들에 있어 독일과의 거래가 마치 우리네 일산에서 분당의 거래처럼 편해진 것이다.

안중근이 염원한 평화 구상을 EU가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음에서 우리는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체제의 착근 가능성을 본다. 동북아 3국의 자유무역협정(FTA) 및 세제의 조화를 모색해서 인적ㆍ물적 교류를 보다 더 확대하자. 당연 국방도 강화해 외적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미치광이들의 말장난에 우리 미래를 맡길 순 없다. 남북 위정자들아, 그대들은 안중근에게 미안하지도 않는가.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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