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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언어 생활의 적폐도 청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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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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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그 민족의 언어생활을 보면 나라의 품위를 가늠할 수 있고, 표준어 속의 유의어 활용도를 보면 나라의 문화 수준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말인 한국어의 사용 현실을 보면 중대하고 절실한 혼란 속에 빠져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1950~60년대에는 말을 주고받을 때 영어 단어 한 두 개쯤은 섞어야 '교양 있는 사람' 으로 인정받았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비속어와 은어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용어, 거기다 영어에 외국어 약어까지 끼워 써야 제대로 사는 사람으로 자부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조선어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 공포했고 3년 뒤에는 표준어 6231개와 약어 134개, 사투리 3082개가 들어간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펴내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80여 년이 흐른 시점에서, 그동안 표준어가 몇 차례나 더해졌고, 그 결과 모두 몇 개나 됐는지 알고 싶어도 물을 데가 없다. 언어 사용 현실이 이 지경인데 확실히 대답해 줘야 하는 데서, 그저 '표준국어대사전'에 미뤄버리고 만다.

그동안 정부의 어문정책이 때마다 이리 저리 이렇게 저렇게 떠돌 수밖에 없었으니, 문화체육관광부든 국립국어원이든 이에 대해 할 말은 넉넉할 터이다. 하지만 업무를 취급했던 그 수많은 손들 가운데 중요성을 알고 책임 있게 일한 손이 없었다는 사실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러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손대서는 안 될 곳에 손을 대서 우리말을 타락시키고 빈약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해 놓았다. 이제라도 청산하고 바로잡아 제 길로 가야한다.

'대박'(2008년 사정), '개기다' 및 '꼬시다'(2014) 같은 비속어들을 표준어로 사정해서 발표한 사례는, 우리말의 타락을 부채질 한 것이다. 특히 '대박'은 2014년 그때의 대통령이 사용하여 제 교양 수준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이어서 모든 언론 매체들이 그대로 받아썼고 이제까지도 자주 쓰고 있다. 비속어와 은어는 세월 따라 흘러가는 말이므로 기록 보존의 대상이지 교양 있는 사람들의 사용 대상은 아니지 않은가.
단어가 생긴 이래 부정적인 표현에만 써온 '너무'(2015)를 긍정적인 표현에도 쓰도록 사정 발표한 것은 쿠데타 같은 행위다. 언어생활을 극단적인 혼란으로 몰아넣었고, 아울러 아주 빈약하게 만들었다. 그 이전까지 발표한 수천만 건의 문학 작품을 비롯한 문서들의 뜻을 어찌 설명해서 뒤집을 것인가. 게다가 '매우, 꽤, 아주, 참, 정말…' 같은 열 개가 훨씬 넘는 유의어를 삼켜버린 채 시치미를 떼고 있다. 앞으로 이를 어쩔 것인가.

띄어쓰기의 문제도 심각하다. '겨울바람'은 붙여 쓰는데 '여름 바람'은 띄어 써야 한다니. '남녀평등', '남녀동등'은 이렇게 쓰는 게 맞고 '남녀 공학', '남녀 차별'은 이렇게 쓰는 게 맞다니. 이런 사례가 엄청나게 많다. 일부를 고쳐 놓은 것으로 보이는데 땜질식으로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출판 전공자들에게 맞춤법을 교수해온 사람도 '표준국어대사전' 없이는 100점 맞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옛말, 순수한 우리말, '소래기'나 '정가롭다' 같은 단어들을 정리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지금 쓰지 않는 단어라 해도 찾아서 자주 써야할 대상이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다. 언어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약속이다. 언어 사용현실이 규정에 앞서지는 않는다. 그러나 '교양 있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고 분위기를 만들어 바람직한 방향으로 길을 내는 일을, 어디서 해야 하는지는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다.

이상문 소설가·전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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