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를 매어도 좋을 만큼 팔뚝이 튼실한 느티나무나 허리 굵은 은행나무가 보이면 정중히 고개를 숙입니다. 마침, 자전거를 타고 느릿느릿 교문 앞을 지나는 노인이 보입니다. 노인과 나무는 비슷한 연배일 것 같습니다. 그런 학교라면 학부형들은 물론 주민들 대부분이, 같은 운동장에서 자라난 사람들이기 쉽습니다. 가녀린 나무들만 차렷 자세로 힘겹게 서 있고, 변변한 그늘 하나 없는 학교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공연히 짠해집니다. 어른들은 모두 출타하고 애들만 남은 집처럼 여겨지는 까닭입니다. 정반대의 학교도 있지요.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시골집 같은!
금세 돌아 나오려 했는데, 한참을 앉아있게 되었습니다. 미끄럼틀 곁입니다. '초등학교 관광'에 제일 좋은 자리지요. 그늘도 좋고 바람도 얌전해서 몸과 마음이 말랑해집니다. 조무래기들이 쉼 없이 재깔거리는 소리도 싫지 않고, 혼자서 축구공을 몰고 가는 아이의 과장된 동작도 귀엽기만 합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이 학교 이름을 넣어봅니다. 전교생 29명의 '미니학교'인데, 교육의 질은 상상 이상입니다. 홈페이지에 구체적 증거들이 가득합니다. 한 학년이 대여섯 명쯤이니 움직이는 대로 교실이 될 것입니다. 찻잎을 따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교장실에서 다도(茶道)를 배우는 영상이 보입니다.
걱정스러운 점은, 두 해 동안이나 신입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학교 선생님들, 이 마을 어른들 모두가 어렵고도 중요한 숙제로 고민하는 눈치입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이 어여쁜 꽃밭을 닮은 학교가, 멀지 않아서 '사람 농사'가 끝난 '묵정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서글픈 일입니다.
폐교의 위기를 면하려면, 같은 처지에 놓였다가 위기를 벗어난 학교들을 배워야지요. 방법은 하나. 외지 어린이들을 '모셔오는' 것밖에는 묘수가 없습니다. 물론 학교 혼자 힘으론 버겁습니다. 지역민은 힘을 모으고, 자치단체는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관계된 사람들 모두의 '합심(合心)'이 중요하지요.
무엇보다, 이런 마음을 앞장세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나고 자란 곳에서 초등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것보다 절망적인 뉴스는 없다. 이 고장 사람들 정신의 탯줄이 묻히고, 우리가 비로소 사람으로 태어난 곳. 농부는 죽어도 '종자(種子)'는 베고 눕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이 마을 '사람 밭'에 무엇을 심고 거둘 것인가." 이 문제를 함께 걱정하고, 같이 풀어보려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말길'을 터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무리 시골사람도 도시에서 세 달만 살면, 촌티를 벗는다. 처음부터 도회지 사람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진다. 그러나 서울 사람이 농촌에서 그만큼을 산다고 농촌 사람이 되진 못한다. '전원(田園)'은 학습의 대상이 아니다."
'하늘과 바람, 풀과 별'은 책이나 영화, 인터넷으로 가르치고 배워질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지요. 그것들과 '동무하며 살아야' 합니다. 문득, 제주도 성산포 가는 길목 깊숙이 숨은 마을 '신풍리'가 떠오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학교는 지켜야겠다고, 안 해본 노력이 없다지요. 이 마을 '농부시인'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덕분에, 김해나 부산에서까지 유학생들이 온답니다. 귀농과 귀촌을 꿈꾸는 이들도 생겨난답니다. 요즘엔 폐교 걱정 대신, 학교를 더 잘 키울 궁리에 골몰하다지요. 아예 살러 오겠다는 사람들 줄도 자꾸만 길어져서, 큼직한 '공동주택'까지 짓고 있다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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