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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가득 찬 잔에는 다른 어떤 것도 못담는다

최종수정 2017.08.31 10:54 기사입력 2017.08.23 11:10

화려한 테크닉보다 실수 줄이는 아마추어 정신이 절실하다

[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금지된 것은 매력적이다.

박성호 경제부장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기대조차 못했던 것이 쏟아질 때 감동은 배(倍)가 된다.

베푸는 이가 "여러분은 앞으로 계속 풍족하게 받고 안전할 것"이라고 확신하면 수혜자는 그와의 관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착한 대통령 문재인은 내년도 예산을 짜면서 복지예산을 대폭 늘릴 기세다.

소득에 상관없이 주는 아동수당(10만원)을 신설한다. 기초연금은 2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올리고 치매국가책임제도 실시한다. 예산 3000억원이 투입돼야 한다.
최저임금을 16% 넘게 인상하고 소상공인이 절규하자 3조원을 인건비 부담 더는데 주겠다고 한다. 내년 전체 예산 중 복지 관련 예산이 3분의 1을 넘을 전망이다.

전 정권에서 재정건전성 등의 이유로 사실상 실행이 힘들었던 항목들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발표한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 증세 방안만으로 충분히 재원 감당이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서민증세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안보에 있어서도 그는 남다른 길을 가고 있다.

육군 병장 출신 문 대통령은 8ㆍ15광복절 경축사에서 "모든 것을 걸고 전쟁을 막겠다"고 했다. 100일 취임 기자회견에서는 "한반도에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을 것이다. 자신 있게 말씀 드린다"고 재천명했다.

전쟁가능성 제로(0)를 선언한 그가 20일 합동참모본부 의장 이ㆍ취임식에서는 '싸워서 이기는 군대'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전쟁이 없을 터인데 어떻게 싸우고 이길 지는 미스터리다.

그럼에도 그의 단호한 어휘는 반론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5년 후가 걱정이라는 목소리는 기우(杞憂)가 됐다. 또 북한을 상대로 연일 군사위협 수위를 높이던 미국 트럼프 정부는 뒤통수를 긁는 처지로 전락했다.

국민들은 환호한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70%를 꾸준히 웃돈다. 줄 수 있었는데 곳간을 풀지 않았고 전쟁 발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던 과거 정권은 '적폐'가 돼버렸다.

자신을 넘어선 확신은 정책의 경직성을 높인다.

'자신(自信)'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 또는 '어떤 일이 꼭 그렇게 되리라'는 스스로의 믿음이다. 믿음의 정도가 한 단계 더 올라가면 '견고하다, 단단하다'라는 뜻의 확(確)이 붙어 '확신'이 된다.

대통령이 확신하는 일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관료사회에서 금기다. 대통령 믿음의 진실성, 현실 가능성 등에 상관없이 지시사항 추진을 위한 경제ㆍ안보의 통계적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은 관료들이 평생 해온 임무이자 업보다.

관료사회는 사각형 정책을 삼각형 시장에 맞추려는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추동력이 될 수 밖에 없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초기 정책에 대한 반발까지도 다 계산에 포함된 것"이라고 자신한다.

"무능해서가 아니라 확신에 사로잡혀 변화할 생각이 없는 지도자가 결국 실패한다"는 실패학 대가 시드니 핑켈스타인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의 말을 굳이 빌릴 필요는 없다.

내가 달리는 길이 교차로 없는 고속도로라고 확신한 채 운전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상식이다. 더욱이 그 길이 안개로 가득 차 있고 혼자 탄 자가용이 아니라 5000만 국민이 타고 있는 초대형 버스라면 무모하기 짝이 없다.

강하고 확신에 찬 한 남자가 선사(禪師)를 찾아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을 달라고 했다. 선사는 찻잔이 흘러 넘치는데도 차를 계속 부었다. 그는 "이미 가득 찬 찻잔은 다른 어떤 것도 담을 수 없다"고 답했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서 어느 나라 지도자도 스스로가 프로페셔널이라고 확신하면 안 된다. 자칭 전문가라는 이들의 화려한 테크닉보다 실수를 줄이려는 아마추어 정신이 더욱 절실한 시기다.

박성호 기자 vicman12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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