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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의 행인일기 54] 정림사지에서

최종수정 2017.08.30 15:47 기사입력 2017.08.11 08:24

윤제림 시인
부여에 왔습니다. 일 년에 두어 번은 내려옵니다. 볼 일이 있어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연고도, 딱히 반겨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고향처럼 자주 찾는 곳입니다. 정림사지(定林寺址). 이 절 마당이 시도 때도 없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이 탑 생각이 나면 견딜 수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면, 비에 젖고 있을 절터 풍경이 궁금해서 버스를 탔습니다. 눈이 오면 눈을 이고 서있을, 탑이 눈에 밟혀서 표를 샀습니다. 자동차가 생긴 뒤로는 한밤중에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은 어둠 속에서, 탑의 실루엣이나 바라보다가 되돌아서기도 했지요. 하지만, ‘부여행’의 보람은 그것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대략 40년쯤 된 습관입니다. 이곳을 처음 본 날의 풍경도 생생합니다. 잡풀이 무성한 공터에 엉성한 철망이 폐사지의 경계를 보여주고 있었지요. 한가운데 돌탑과 돌부처가 폐족(廢族)들처럼 서 있었습니다. 총독부가 만든 ‘조선고적도보’나 1961년 에 문교부가 펴낸 ‘국보도록’이 보여주는 모습과도 큰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잘 살아 보자’ 한마디가 온 국민의 화두였던 시절, 문화재를 돌볼 여유는 아직 없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얼마나 많은 유물들이 논두렁이나 밭머리에서 굴욕과 인종(忍從)의 세월을 견뎌야 했는지요. 불운한 비석은 구들장이나 빨래바위가 되었습니다. 무덤 석물(石物)들은 고급식당 정원이나 부잣집 뒤뜰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저도 잘못을 빌어야 합니다. 제가 자란 도시의 박물관 뜰에 앉아있는 바윗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 저와 제 친구들은 청동기 시대 ‘고인돌’ 위에서 뛰고 구르며 놀았습니다. 물론, 푯말도 안내문도 없었지요. 아무도 그 커다란 바위의 정체를 일러주지 않았고, 누구도 우리를 꾸짖거나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국보 9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이름조차 잘못 불려서, 설움이 더 컸지요. ‘평제탑(平濟塔)’. 백제를 쓰러뜨렸다고 으스대던,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전승기념탑 쯤으로 잘못 알고 지냈습니다. 말하자면 외국인의 낙서에 속아서, 가엽게만 바라보았던 세월이 무척 길었습니다.

과거를 반성하고 진정한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일까요. 부여는 요즘 이곳을 광화문처럼 모십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정림사는 백년 넘게 도읍이었던 이 ‘사비성’의 심장부에 위치한 절입니다. 흥미로운 유물도 유구(遺構)도 부족한 이 고도에서, 이곳은 정말 고맙고도 소중한 상징이지요. 아니, 이 탑이 ‘백제’입니다.

때늦은 효도일수록 극진하지만, 금세 제풀에 지치기 쉽습니다. 여간해선 표도 나질 않으니까요. 그저 소처럼 묵묵히 밀고 나가야 하는 일. ‘문화재’라는 어른 봉양에도, 돈보다는 마음을 더 써야 합니다. 끊임없이 살피고 보듬어야지요. 멋진 담장을 두르고, 아름다운 등불을 다는 일은 그저 효도의 출발점일 뿐입니다.

고려 석불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폭염경보’입니다. 공연한 걱정이 일어납니다. 이상기후가 문화재의 운명까지 바꿔놓을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저 탑도, 이 불상도 예외가 아닐 테지요. 입구 쪽의 낯선 기계로 눈이 갑니다. 문화재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장비입니다.

궁금해집니다. “테러 수준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저 석탑과 보호각 안에 모셔진 이 불상은 어느 쪽이 행복할까. 부여박물관 뜰의 돌부처는 실내에서 지내던 시절을 그리워하지는 않을까. 김수근 씨 건축으로 유명한 옛 박물관 사진을 보니, 백제 토기랑 옹관들이랑 함께 지내던 바로 그 석불이던데.”

전각을 지었다 뜯었다 하던 ‘서산 마애불’ 생각이 포개집니다. 탑골공원 원각사지 십층석탑도 떠오릅니다. 유리 상자에 안치(安置)되어 있지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있는 경천사지 십층 석탑의 처지도 생김새만큼이나 비슷합니다. 일본으로, 궁궐 안팎으로 떠돌다 박제 신세가 된 사연이 ‘덕혜옹주’ 얘기처럼 서글픕니다.

안에 있는 것들과 밖에 있는 것들. 제자리를 지키는 것들과 엉뚱한 곳으로 밀려난 것들. 누워있거나 아직도 묻혀있는 것들. 문화재도 타고난 팔자 같은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이 고장 출신 박용래(朴龍來) 시인의 시 ‘소나기’가 떠오릅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비를 그리는 돌탑, 이 땡볕이 아무렇지도 않은 돌부처가 겹쳐집니다.

누웠는 사람보다 앉았는 사람 앉았는 사람보다 섰는 사람 섰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 혼자 걷는 사람보다 송아지 두, 세 마리 앞세우고 소나기에 쫓
기는 사람

소나기든, 햇살이든 꼭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늘은 고단한 사람을 더 따르고, 바람은 착한 사람 편으로 더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물론, 사람이 섬기고 부리는 모두에게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나는 계절의 빛과 그림자가 두루 공평했으면 좋겠습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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