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런던의 명문대학에서 석사과정 중인 한국인 학생이 제가 다니던 회사와 인터뷰가 잡혔다며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반가웠던 저는 최대한 상세히 면접 팁을 주고자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요. 그런데 정작 그녀는 제 조언에는 관심 없었고 자신의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면접에 가면 떨어질 거라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저는 "실력이 되니까 이렇게 좋은 학교에 다니고 서류전형도 합격한 거잖아요. 면접도 잘 할거에요"라고 격려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짜증을 내면서 "잘 아시잖아요, 한국 사람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네이티브 스피커 애들을 이기겠어요?"라고 반복적으로 얘기하더군요. 지친 저는 결국 "그럼 떨어지시겠네요. 원래 사람은 믿는대로 되는 법이거든요"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추측컨대 그녀의 영어실력은 충분했을 것입니다. 다만 '네이티브 스피커'라는 자신의 기준에 못 미쳤을 뿐. 특히 똑똑한 친구들 중에는 이런 완벽주의자들이 많습니다. 100점 만점만이 유일한 점수인 그들은 99가지가 완벽해도 1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99가지마저 물거품이 됐다고 생각하지요.
이렇게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들은 남들에게도 엄격하기 마련입니다. 일례로 소개팅을 주선하다보면 매번 상대방의 단점을 조목조목 열거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물론 소개팅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다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자신의 상대는 100점 만점이어야 한다는 기준에서 시작해 "배가 나왔으니 -10점, 나이가 좀 많으니 -20점, 옷차림이 촌스러우니 -10점, 그래서 이 사람은 60점"하고 사람을 규정해버리는 그들의 계산방식에 당황하곤 합니다. 주선자인 저는 0점에서 시작해서 인격이 훌륭하니 +40점, 직업이 좋으니 +10점, 경제관념이 확실하니 +10점, 운동을 좋아하니 +10점, 술ㆍ담배를 하지 않으니 +10점 이렇게 80점을 줬는데 말이지요.
물론 뺄셈법의 장점도 있습니다. 자신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노력해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하지만 똑같이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미 충분하지만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라는 마음가짐과 '지금의 나는 너무 부족하니 더 채워야 해'라는 마음가짐의 차이는 작지 않겠지요.
진여(眞如) 즉, 있는 그대로의 것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타타타'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죠. 거기엔 "산다는 건 좋은 거지 / 수지맞은 장사잖소 / 알몸으로 태어나서 / 옷 한 벌은 건졌잖소"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인생에 더하고 있나요. 오늘 그걸 적어보는 건 어떨까요.
김수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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