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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주입식 안 통하는 '중국판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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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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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헌신한 수많은 중국 영웅을 사례로 들고 이들과 하루를 같이한다고 생각하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보라.' '사람의 마음속에는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이 있는데 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조화로운 자아를 만들 수 있나.'

'중국판 수능'의 역대 기출 문제다. 중국에서는 매년 6월 초 대학 입학 시험인 '가오카오(高考)'를 치른다. 통상 7~8일 이틀 동안 치르는 가오카오가 끝나면 중국의 모든 언론이 기출 문제를 복기하면서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우리 수능에서는 보기 힘든 재밌는 풍경이다.
특히 첫째 날 1교시 과목인 언어 영역에 포함된 작문은 매년 화제를 모으는, 가오카오의 '하이라이트' 격이다. 올해에는 공통 주제로 '중국에서 유학 중인 대학생 조사에 따르면 중국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일대일로, 판다, 광장무(광장춤), 중국 음식, 만리장성, 공유 자전거, 경극, 공기 오염, 아름다운 농촌, 식품 안전, 고속철, 모바일 결제라고 한다. 두 가지 단어를 선택해 외국 청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신이 알고 있는 중국에 대한 글을 쓰라'가 제시됐다.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 중국인 여성은 "분량 800자 이내의 작문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모든 이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풍부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엉뚱한 문제도 자주 나온다"고 말했다. 단순한 주입식으로는 가오카오를 절대 좋은 점수로 통과할 수 없다고도 했다.

중국의 수능은 우리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중국은 매년 9월 신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와 달리 여름철에 입시를 치른다. 또 우리처럼 하루에 끝나는 게 아니라 이틀이 기본이다. 시험 문제는 지방마다 다르다. 출제 난이도를 최대한 조절하지만 지방마다 '복불복'인 셈이다. 베이징에 살고 있더라도 후커우(戶口·호적)가 상하이로 돼 있으면 상하이로 가서 시험을 치러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수험생=왕' 대접을 받는 것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입시철에는 '링거족'이 등장한다. 수험생이 교실에서 단체로 링거를 맞는 '웃픈(웃기고 슬픈)'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떠돈다. 각종 미신 문화도 엇비슷하다. 합격 엿 대신 '완전 무결하다(十全十美)'는 의미를 담아 10위안(5위안짜리 2장)을 건네고 주로 붉은색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다. 시험장으로 가는 길에 탈 '6'이 들어간 번호판 택시는 웃돈을 얹고 예약한다.

올해로 부활 40주년을 맞은 가오카오는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다. 문화 대혁명으로 11년 동안 폐지됐던 가오카오는 1977년 한 교수의 제안을 들은 덩샤오핑이 결단을 내린 덕에 부활했다. 그 해 전국에서 1160만명이 응시했고 이는 아직도 깨지지 않은 세계 시험 역사상 최다 기록이다.

당시 수험생이었다는 한 중국인은 "가오카오를 회복시킨 덩샤오핑이 중국의 사회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느낀다"고 했고 또 다른 중국인은 "가오카오가 우리 가족의 운명을 바꿨다. 4형제가 모두 농촌을 벗어나 대학에 진학했다. 역사는 당신들의 업적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중국에서 수능은 '인생이 걸린 시험'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상상 초월의 부정행위가 판을 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오죽하면 조직적인 부정행위 사안이 엄중할 경우 3년 이상 7년 이하 징역형과 벌금형에 처하도록 형법에 명시할 정도다. 당일 시험장 앞에서 기도하는 부모와 감시하는 공안이 한 데 어우러진 모습도 볼거리다.

이는 대학 진입 문턱이 높은 탓이다. 이번에 시험 친 930만명 중에 절반 정도만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지난 40년 동안 시험을 통과한 2억명이 각 분야에서 사회 지도층으로 성장했다는 통계 이면에는 극심한 경쟁 속에 가오카오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실정이다. 수능이 성공을 보장하는 승차권이며 어렵게 들어간 대학의 교육은 사회적 필요와 괴리가 큰 현실은 우리와도 똑 닮은 것 같아 뒷맛이 좀 씁쓸하다.



베이징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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