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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달맞이꽃/송재학

최종수정 2017.05.16 09:49 기사입력 2017.05.16 09:49

 

그림 = 이영우 화백
 내가 짐작하는 달은 지상에만 제 짝이 있다 달빛이 쌓아 올린 저녁 너머 달의 일부였던 꽃이 있고, 달을 따라가지 않고 지상에 남았던 꽃은 삭망(朔望)을 되새김질하는데, 그게 슬프지만 않다

 달빛은 꽃이 되지 못하지만 꽃잎에 가깝고, 하염없이 늙어 가지만 죽지 않는 달을 기억하는 꽃의 노란색 발묵은 기어이 휘발하고 만다

 달빛이라는 가느다란 손가락이 있다면 젖은 송연먹이 떠받치는 성청(聲淸) 고요도 있다

 달맞이꽃은 달빛의 농담(濃淡)에서 비롯된 속삭임을 사용하고, 몇 가지 달맞이꽃의 수화를 익힌 밤의 이목구비가 또렷해진다
 

■아름답다. 만약 내게 재주가 있어 허공에 글씨를 쓸 수 있다면 한밤 내내 새벽이 올 때까지 옮겨 적고 다시 옮겨 적고 싶은 시다. 옮겨 적을 때마다 달빛은 그저 조금 짙거나 조금 옅은 속삭임으로 "꽃이 되지 못하지만 꽃잎에 가"까운 속삭임을 들려주리라. 그 속삭임은 맑고 향기로워 송연먹 향이 온 밤하늘에 가득할 것이고. 그러나 "달을 기억하는 꽃의 노란색 발묵은 기어이 휘발하고 만다". 애잔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 시인은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게 슬프지만은 않다'고. 이런 까닭에서일 것이다. 달맞이꽃은 "달을 따라가지 않고" 일부러 "지상에 남"은 "달의 일부"다. 그래서 이 지상의 밤들은 또 하늘하늘거리는 "달맞이꽃의 수화를 익"혀 "이목구비가 또렷해"지는 것이고. 그러니 이 밤이 온통 경탄스러울 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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