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스스로 영웅이 되려고 하거나, 아니면 영웅이 나타나길 바란다. 영웅에 대한 인류의 집착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보호본능, 즉 영웅이 그러한 일(공동체의 지속과 발전)을 해내거나 그러한 일에 앞장설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가 영웅을 염원하고, 그에 열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영웅 현상은 영웅이 떠오르는 스타덤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영웅을 추대하는 팬덤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생존과 번영이 걸린 절체절명의 팬덤이 스타를 옹립하는 것이다. 영웅은 보통 사람들, 즉 인류가 존속하는 한 앞으로도 희구(希求)되고, 그 희구 때문에 영웅이 등장하고 영웅이 한 시절을 지배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스토리에 반전이 있듯이 영웅도 예외는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웅은 인간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거나 감각의 피로를 버티지 못해 타락의 길로 접어든다. 영웅을 망가뜨리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를 영웅시하는 팬덤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웅의 파멸 과정이 공동체의 붕괴 또는 막대한 타격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영웅을 만든 자들이 되레 영웅을 끌어내리고, 지키고자 했던 공동체를 파괴하는 아이러니는 새롭지도 않다.
#기독교는 메시아의 종교다. 신의 아들, 혹은 신의 현신(現身)이 인간을 구원하러 온다는 것이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가 그 메시아라는 것이 기독교의 바탕이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은 메시아 앞에서 회개하고,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이다. 메시아는 구원자이면서 동시에 절대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의탁하는 것 이외의 선택은 있을 수 없다. 의심해서도 안 되고, 의심할 수도 없다는 의미에서 메시아는 '인간 중의 인간'인 영웅과는 차원이 다른, 즉 '신격(神格)이 부여된 영웅'이다. 이런 메시아주의가 투영된 것 중에 하나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적 과정과 경제적 조건으로 인해 노동자 계급(프롤레타리아)이 자본주의를 혁파할 메시아가 될 것이라고 믿었고, 프롤레타리아라는 메시아에 의해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헤겔 철학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는 이를 절대 바뀔 수 없는 철(鐵)의 법칙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적어도 지금까지는 마르크스가 예견한 메시아에 의한 새 세상은 도래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그의 메시아(프롤레타리아)를 앞세운 공산당 독재가 인류사에 말 그대로 '흑역사'를 남기고는 사라져 버렸다.
윤순환 러브레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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