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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곡의 인문의 창]이런 진보 정당은 어떤가?

최종수정 2017.03.28 14:13 기사입력 2017.03.28 11:23

이남곡 인문운동가
지금까지 진보는 압제와 착취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해방이라는 기치로 표현해 왔다. 그런데 지난 한 세기의 실험을 거친 우리 시대에 와서 이 해방의 의미를 곰곰이 짚어볼 때가 온 것 같다. 나는 이제 진보가 '자본의 지배로부터 노동의 해방'이라는 기치보다는 '물신(物神)의 지배로부터 인간의 해방'이라는 기치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물론 아직도 '자본의 지배로부터 노동의 해방'이라는 요구가 있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그것은 '물신의 지배로부터 인간의 해방'이라는 가치에 부분 가치로 포함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진보운동의 주체가 노동계급이라는 종전의 시각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해방은 타자의 속박, 착취, 차별 등에서 벗어나는 것을 주로 의미했다. 지금도 물론 이러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자기 안에 있는 낡은 관념과 인습, 생활양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해방의 비전이 생기지 않는다. '벗어나서 어디로 간단 말인가?'하는 질문 앞에 좌초하고 만다. 이제는 이 두 가지 해방이 조화되고 통합되어야 진실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타자로부터의 해방'과 '자기 안의 낡은 것으로부터 해방'이 그것이다. 적어도 진정한 진보정당이라면 사회적 불평등이나 차별, 억압이나 착취를 해소하는 정강 정책과 함께, 당원 스스로 자기 안의 낡은 것을 청산하고 새롭게 진화하는 사람의 진보를 그 강령으로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자기 안에 타자를 지배하려는 욕구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즉 민주주의자로 되는 것이다. 과거의 민주집중제 같은 실제로는 독선과 독재를 낳는 그런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는 진정한 진보라고 할 수 없다. 이 지배욕은 물리적ㆍ심리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것들로부터 자기해방과정, 즉 수평적이고 평화적인 인격으로 되는 것이 진정한 진보적 인간이다.

둘째는 자기안의 예속적 태도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즉 자립적인 사람으로 되는 것이다. 예속에 반대해서 싸우지만 스스로의 관념 안에 있는 예속성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반대해서 싸우지만 혼자서는 서지 못하는'사람으로 되기 쉽다. 냉철하게 보면 싸우는 대상에 사실은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악순환이다. 그래서는 희망이 없다. 자본주의를 넘어서길 바란다면 자주관리 시스템이나 협동기업이 자본주의적 기업보다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 때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리하게 이런 생산형태를 취할 필요까지는 없다. 비록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 할지라도 노사가 진정한 파트너로 되어 보다 진전된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양쪽에서 상호간에 오는 것이다.

셋째는 자기 안의 차별의식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차별에 반대해서 싸우지만 자기 안의 차별의식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비록 낡은 사회를 일시적으로 무너뜨리는데 성공한다 할지라도 새로운 차별 사회를 낳을 뿐이다. 이것은 그 동안의 역사가 비싼 대가를 치루면서 가르쳐 준 교훈이다. 진정으로 진보적인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차별의식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하관념, 우열의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유달리 저항적인 사람들 가운데는 이 차별의식이 강한 사람이 적지 않다.
악(惡)에 저항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기 쉽지만, 이제는 그 실태를 잘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약자 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 이런 의식에서 벗어날 때 당당한 운동가가 될 수 있다.

넷째로 자기중심성으로부터 해방하는 것이다. 이것은 각자도생의 차가운 이기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보적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표징(標徵)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중심성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득권을 내려놓고 양보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되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 노동조합이나 공공노조가 심각한 임금과 연금 격차에 눈을 감고, 자기 집단의 이익의 성곽을 쌓는다면 그것은 진보의 대의를 배반하는 것이다.누구에게나 양보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진보라는 목표를 같이하는 사람들 상호간에도 이것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디에 희망을 둘 수 있을까. 내부의 헤게모니 싸움에나 자기집단의 이익에 몰두하는 그런 사람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자기 안의 낡은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새로운 인간, 진보적 인간이 출현한다. 새로운 정당은 그 강령 속에 이러한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담아야 할 것이다. 시대가 바뀌는 시점에서 꿈을 꾸어 본다. 사회와 사람이 함께 진보하는 세상을 그리는 그런 정당은 출현할 수 없을까?

이남곡 인문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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