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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방상시(方相氏)/전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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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새도 지렁이도 알아듣는
그림과 노래와 춤만 탈에 넣었다네
굴레를 타고 지나는 길은
사람은 모르고 사람 아닌 것만 알고 있는 길
눈이 밝아 은단처럼
노랫소리 구슬프고
눈이 눈을 낳아
네 눈은 대장(大葬)의 앞에서
앉은 것도 아니고 선 것도 아니고
너는 찡그리고
사방을 향해
멀리 떠나는 상여처럼
곰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금빛 눈으로
적과 흑의
바람을 가르며
문을 나서네
나무도 새도 지렁이도 알아듣는
그만 이 난중(亂中)의 숲에서
북과 징을 치며

■ '방상시'는 나례(儺禮)를 거행하는 나자(儺者)들 중 하나로, 네 개의 금빛 눈이 있고 방울이 달린 곰 가죽으로 만든 큰 탈을 쓰고 있으며 붉은 옷에 검은 치마를 입고 창과 방패를 지녔다고 한다. 그리고 '나례'는 음력 섣달그믐에 묵은해의 악귀를 쫓아내고자 베풀던 의식이라고 한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섣달그믐이다. 아니 곧 섣달그믐이라서 이 시를 옮겨 적었다기보다는 아직도 "난중"이라서 여기에다 필사했다. "이 난중의 숲에서/북과 징을 치며" "황금빛 눈으로/적과 흑의/바람을 가르며" "나무도 새도 지렁이도 알아듣는" 그러나 "사람은 모르고 사람 아닌 것만 알고 있는 길"을 저 앞장서 훠이훠이 틔우고 있는 방상시, 그 구슬프고 무서운 얼굴이 그리워서 말이다. 방상시가 낸 길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는 사람이라면 실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 해를 지나 광장이 열리고 다시 열리고 있다. 길과 길 아닌 곳에 축귀하듯 사람의 길을 새로 여는 당신, 당신들을 존경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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