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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삶터] 스키도 정답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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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경 잉글리시컨설팅그룹 대표

케빈 경 잉글리시컨설팅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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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만 되면 온통 스키 생각뿐이다. 중년 스키어들 사이에 꽤 알려진 스키동호회 회장을 맡으면서 이번 시즌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스키 실력은 내로라하는 국내 상급 슬로프 어디든 어렵지 않게 내려올 수 있는 수준이다. 7년여 전 초급 슬로프에서조차 제대로 제어도 못 하는 왕초보였으니 크게 발전한 셈이다. 그럼에도 스키 고수들은 나의 폼의 허점을 지적하기 일쑤다. 제대로 안 타면 관광스키란다.

진정한 고수만 이런 식으로 지적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스키어로 자처하는 자라면 누구나 자연스레 다른 스키어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어딘가 교과서적인 폼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우리 스키어들은 리프트만 타면 슬로프를 내려가는 다른 스키어들을 보게 된다. 그냥 보는 게 아니다. 폼을 본다. 슬로프에서도 이런 식의 관찰은 이어진다. 스키어들은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중급 슬로프든, 상급 슬로프든, 짧든 길든, 일정 거리만 차근차근, 한 턴 한 턴 FM대로 타고 내려와서 고속도로 갓길로 여겨지는 슬로프 가장자리에 선다. 그러곤 다른 스키어들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평가한다. ‘턴은 잘 되는데 외향경이 전혀 없어.’ ‘저건 몸턴이야, 몸턴.' ‘잘 탄다 정말. 난 언제 저렇게 타나?’ ‘어, 저 사람, 언제 저렇게 실력이 는 거야? 강습 받나?’ 매번 이렇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늘 스키를 타고 있으면 타인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국내에서 스키 폼의 기준은 아무래도 대한스키지도자연맹(KSIA)이 채택한 스탠더드가 으뜸이다. 누구나 레벨 시험을 통해 레벨 1부터 3을 부여 받을 수 있다. 스키지도자 자격증이므로 강사를 목적으로 하는 이들도 당연 있지만 일반인도 흔히 시즌이 되면 가장 기초적 단계인 레벨 1에 도전한다. 여기에 KSIA는 매년 기선전을 통해 일정 숫자의 데몬까지 뽑는다. 말 그대로 demonstrator(데몬스트레이터)의 준말인 데몬은 시범자인 만큼 곧 살아 있는 교과서, 즉 ‘정답’으로 간주되는 폼의 표본을 데모할 수 있는 이들이다. 레벨 시험을 앞둔 지망생들은 이들의 유튜브 비디오를 밤새 돌려보기도 한다.
물론 슬로프에 나가서 연습도 틈틈이 한다. 레벨 테스트를 앞둔 스키어들이나, 시즌 강습을 받는 이들은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일반 스키어들 대다수도 스키를 탄다기보다는 연습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나도 본의 아니게 매번 연습만 하다 접는 듯하다.

그래서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스키에도 정답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스키에서도 정답을 찾는다. 늘상 이렇게 무엇이든, 어디서든 어김없이 ‘정답’을 찾는다.

얼마 전에 평창에 있는 한 스키장에서 동호회 회원들과 한참 스킹하던 중 넘어져 있는 외국인 한 명을 발견했다.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고 보니 미국사람이었다. 짧은 잡담을 나눈 후 그가 동료들과 합류해서 타는 걸 지켜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맞다. 저들은 다르다. 우리는 연습하지만 저들은 스키를 그저 즐긴다. 과정을 즐기는 거다.

그 자리에서 내심 반성했다. 나는 너무나도 기준에 치우쳤다. 스키도 과정을 즐길 필요가 있다. 스키 자체를 즐기는 걸 목적으로 하자. 한국인과 서양인의 차이점은 여행만 놓고 봐도 대번 느낀다. 그들은 여행 과정 자체를 즐기지만 우리는 최대한 적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걸 보려 한다.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 까닭이다. 내가 기업 연수생들에게 말하지 않는가. 정확성보다 유창성이 더 중요하다고. 스키로 따지면 레벨 1 자격증을 따는 것보다 편하게, 안전하게 소위 관광스키라도 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도 슬로프로 향한다. 연습하러. 평가하러. 정말이지, 나도 못 말린다.

케빈 경 잉글리시 컨설팅 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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