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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누가 '천재의 비운'을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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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라는 말은 양 극단이 뒤섞여 그 자체로 드라마의 뉘앙스를 풍긴다.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일상이다보니 특출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럽다.

경외심마저 갖게 되고 묘한 흥분도 일어난다. ‘슈퍼 히어로’에 열광하는 심리와 비슷할 것 같다. 하지만 그 부럽디 부러운 행운에 비운이 스며들면 부러웠던만큼이나 애잔한 슬픔이 쌓인다. 마치 아이러니한 이 세계의 진실의 한 자락은 아닐까 하는 상념도 섞인다.
최근 스포츠 기사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K리그 챌린지(2부 리그)의 서울 이랜드 수장으로 선임된 김병수 감독에게 닉네임처럼 붙는 표현이 ‘비운의 천재’다. 그의 선수 시절은 전설의 요소가 차고 넘친다. 강원도 홍천초등학교에서 공을 차기 시작했을 때부터 서울에까지 소문이 돌 정도였다고 한다.

서울 미동초등학교의 코치가 직접 찾아가 그를 스카우트했고 당시 포항제철 축구팀 감독이 세계적인 대선수로 키워보겠다며 데려갔다. 최순호나 박창선 같은 스타 선수들 틈바구니에서 한 어린이가 축구를 배우며, 때론 연습경기에 참여해 골을 넣기도 했다는 일화는 짜릿할 정도다.

강원도에서 서울 학교로, 다시 프로축구팀으로 옮겨왔지만 그마저도 부족했었나보다. 당시로서는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축구 유학이 추진됐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정부 방침은 축구 유학 기간동안을 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회 제도가 그의 꿈을 한 번 막아선 셈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발목 부상을 당했다. 이번에는 후진적인 운동 시스템이 문제였다. 제대로 된 재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경기에 투입돼 부상은 더욱 악화됐다.

그럼에도 그의 천재성은 다시 증명된다. 고려대 재학 시절 거의 경기에 출장하지 못할 정도였지만 ‘반드시 이겨야 하는’ 연세대와의 정기전에는 출전해 승리를 이끌곤 했다. “5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 등 극찬의 대상이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 한일전에서는 결승골을 넣었다. 그는 그 골을 넣고 운동장을 포효하듯 뛰어다녔다. 마치 찬연히 빛나는 꽃의 절정을 예감하듯이.

그는 지극히 가난하게 자라 수술비를 댈 형편이 못 됐다. 대학교 4학년 때에야 수술을 받았지만 때는 많이 늦었다. 발목 인대가 1인치나 늘어난 상태의 축구선수였다. 부상을 거듭하면서 그는 잊혀져갔고 일본 실업무대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이후 그는 지도자로서 새로운 전설을 써내려가고 있긴 하다.

그리고, 박태환이 있다. 한국의 월드컵 4강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수영 종목 금메달의 주인공이다. 그만큼 브라질 올림픽에서의 부진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약물 파동의 기억 속에서 씁쓸한 퇴장을 할 것처럼 보였다.

헌데 체육계를 지원해야할 부처의 차관이 올림픽 출전을 만류했다는, 거짓말 같은 얘기들이 나왔고 최순실의 그림자도 아른거린다. 황당함을 넘어선 허망함으로 다가왔다. 돕기는커녕 재를 뿌리는 정부라니. 하지만 박태환은 오뚜기처럼 일어서 쇼트코스 세계선수권대회 3관왕을 거두며 부활의 날개짓을 하고 있다.

천재를 비운으로 이끄는 사회라면,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척박한 땅에서 힘겨운 도전을 이어온 김병수 감독과 박태환 선수의 새로운 미래를 응원하고 싶다.

박철응 금융부 차장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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