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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씨름, 국가무형문화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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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중학교 저학년 때다. 우리 집은 방이 3칸이었다. 부모님은 안방, 삼형제가 작은방을 함께 사용했다. 남는 방 하나는 잠깐 하숙을 치셨다. 여름방학식을 마치고 집에 오니 덩치가 산(?)처럼 큰 학생이 어머니와 이야기 중이였다. 마산에서 왔다는 그 학생은 잘나가는 씨름유망주였다. 훈련을 위해 마산에서 진주로 씨름유학을 온 셈이다. 방학동안 하숙을 하면서 운동을 했다. 우린 또래였기에 금방 친해졌다. 운동이 없는 날은 시내 구경을 하기도 했다.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애교와 끼가 많았다. 부모님은 그런 그를 참 좋아하셨다. 반찬도 녀석 위주로 만드셨다. 덕분에 반찬 호강을 했다. 애교 많은 그도 씨름장에선 카리스마 넘친 황소였다. 여러 방면으로 다재다능했다. 세월이 흘러 그는 천하장사가 됐다. 끼 있는 우승 세리모니와 제스처로 인기스타가 됐다. 정상에 있을 때 홀연 씨름판을 떠났다. 지금은 잘나가는 방송인이 되어 있다.

 # 우리집은 큰집이다. 명절이면 친지들이 오셨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텔레비전(TV) 앞으로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채널은 한 곳에 고정된다. 다른 프로그램을 보려 채널을 돌리는 일은 상상 할 수 없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80~90년대 최고 스포츠인 민속씨름이 시작됐다. '천하장사' 이만기,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인간 기중기' 이봉걸 등 걸출한 스타들이 힘을 겨뤘다. 아버지와 친지들은 TV앞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와 탄식을 연발 하셨다. 선수들이 펼치는 용틀임에는 함께 용을 쓰셨다.
 초창기 민속씨름 중계방송은 평균 시청률이 30%를 넘나들었다. 1988년 이만기와 이준희가 맞붙은 천하장사 결승전은 68%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올렸다. 경기가 길어지면 중계방송 아나운서는 "9시 뉴스는 씨름이 끝난 다음에 보내 드리겠습니다"라는 안내를 하곤 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당시는 그랬다.
 우리 민족이 즐긴 씨름 역사는 깊다. 고구려 고분에 씨름벽화가 나온다. '씨름'이라는 말 자체도 순전히 우리말로 '시루다'가 어원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힘을 겨룬다'는 뜻이다. 이 씨름은 조선시대에 민속놀이로 정착되면서 단오, 백중, 한가위의 대표적인 민중놀이가 됐다.

 조선 정조 때 학자 유득공이 지은 '경도잡지'에 씨름하는 방법이 나온다. "소년들은 남산 기슭에 모여 씨름을 한다. 두 사람이 허리를 굽혀 왼손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다리를 잡고, 오른손은 서로 상대방의 허리를 잡는다. 그리고 번쩍 들어 메어친다. 씨름에는 안걸이ㆍ밖걸이ㆍ돌려치기 등 여러 가지 재주가 있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씨름도'도 보자. 힘을 겨루는 두 사람 표정이 아주 대조적이다. 한 사람은 용을 쓰며 들어 올리려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발이 들려 곧 넘어질 듯하다. 빙 둘러 앉은 구경꾼들 표정은 흥미진진하다.

 씨름은 서민들만 즐겼던 게 아닌가 보다. 고려 충혜왕은 '씨름광팬'이였다. 고려사에는 "왕이 된 첫 해(1331년) 제일 먼저 한 것이 아랫것들과 씨름을 벌였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조선 세종도 씨름사랑은 각별했다. 세종실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강변과 남산등지에서 자주 씨름판을 벌이라 지시하고 중국 사신들에게도 보였다."
 씨름은 다른 경기와 달리 맨살과 맨살이 직접 닿아 서로 체온이 오가는 운동이다. 정이 서로 통하는 우리민족성과 맥을 같이 한다.
 최근 민속놀이인 '씨름'이 국가무형문화재(제131호)로 지정됐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단다. 씨름 열기가 예전만 못한 이때 문화재로 지정된 소식이 반갑다. 다가오는 설날, TV채널을 씨름중계에 맞춰야겠다. 장사들이 펼치는 화려한 기술에 아버지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길 바래본다.

 조용준 사진부장ㆍ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아시아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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