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집은 큰집이다. 명절이면 친지들이 오셨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텔레비전(TV) 앞으로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채널은 한 곳에 고정된다. 다른 프로그램을 보려 채널을 돌리는 일은 상상 할 수 없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80~90년대 최고 스포츠인 민속씨름이 시작됐다. '천하장사' 이만기,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인간 기중기' 이봉걸 등 걸출한 스타들이 힘을 겨뤘다. 아버지와 친지들은 TV앞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와 탄식을 연발 하셨다. 선수들이 펼치는 용틀임에는 함께 용을 쓰셨다.
우리 민족이 즐긴 씨름 역사는 깊다. 고구려 고분에 씨름벽화가 나온다. '씨름'이라는 말 자체도 순전히 우리말로 '시루다'가 어원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힘을 겨룬다'는 뜻이다. 이 씨름은 조선시대에 민속놀이로 정착되면서 단오, 백중, 한가위의 대표적인 민중놀이가 됐다.
조선 정조 때 학자 유득공이 지은 '경도잡지'에 씨름하는 방법이 나온다. "소년들은 남산 기슭에 모여 씨름을 한다. 두 사람이 허리를 굽혀 왼손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다리를 잡고, 오른손은 서로 상대방의 허리를 잡는다. 그리고 번쩍 들어 메어친다. 씨름에는 안걸이ㆍ밖걸이ㆍ돌려치기 등 여러 가지 재주가 있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씨름도'도 보자. 힘을 겨루는 두 사람 표정이 아주 대조적이다. 한 사람은 용을 쓰며 들어 올리려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발이 들려 곧 넘어질 듯하다. 빙 둘러 앉은 구경꾼들 표정은 흥미진진하다.
씨름은 서민들만 즐겼던 게 아닌가 보다. 고려 충혜왕은 '씨름광팬'이였다. 고려사에는 "왕이 된 첫 해(1331년) 제일 먼저 한 것이 아랫것들과 씨름을 벌였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조선 세종도 씨름사랑은 각별했다. 세종실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강변과 남산등지에서 자주 씨름판을 벌이라 지시하고 중국 사신들에게도 보였다."
최근 민속놀이인 '씨름'이 국가무형문화재(제131호)로 지정됐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단다. 씨름 열기가 예전만 못한 이때 문화재로 지정된 소식이 반갑다. 다가오는 설날, TV채널을 씨름중계에 맞춰야겠다. 장사들이 펼치는 화려한 기술에 아버지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길 바래본다.
조용준 사진부장ㆍ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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