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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독서]공민왕의 '반원 개혁', 왜 실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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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독서]공민왕의 '반원 개혁', 왜 실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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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한반도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구려·백제·신라나 발해는 수·당과 사대관계를 맺으면서도 곧잘 칭제건원을 내세웠다. 고려는 전기만 하더라도 대내적으로 황제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원 간섭기부터 사대 종속관계에 묶였다. 형식적으로조차 황제 체제를 재현하지 못했다. 중국에 대해 매년 정규적인 사신 행차나 사대 조공 외교가 관행화된 것도 원 간섭기부터다. 이어진 조선과 명은 사대 복속의 관계를 당연시 여겼다. 조선에서 격하된 관부의 명칭이나 용어를 부정하거나 거스르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몽골 제국의 고려 지배가 중국과의 역사 관계에서 사대 복속을 벗어나지 못한 계기가 된 셈이다.
'고려 무인 이야기' 시리즈를 쓴 역사저술가 이승한씨는 신간 '몽골 제국의 쇠퇴와 공민왕 시대'에서 사대 종속 관계가 고착화된 역사적 배경을 상세하게 살핀다. 그는 공민왕 시대(1351년~1374년)를 주목한다. 당시 정치는 '반원 개혁'으로 일컬어진다. 공민왕은 1356년 기황후의 오빠이자 권세가인 기철 일당을 제거했다. 곧바로 원 제국의 연호 사용을 정지하고, 그간의 사대 복속 관계를 재검토했다. 압록강 서쪽을 공격하고 쌍성총관부를 수복하는 등 영토 회복에도 나섰다. 그러면서도 원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을 파견하는 등 원과의 정면충돌을 피했다. 노골적으로 배반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과거처럼 형식적인 사대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려 했다.

공민왕의 계획은 오래 가지 못했다. 중국의 반란 세력인 홍건적이 두 차례나 고려에 쳐들어오고, 김용 등이 그를 시해하려는 흥왕사의 변란을 일으키면서 왕권이 크게 축소됐다. 기황후 측에서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새로운 국왕을 세우려는 공작까지 벌여 반원 정치를 지속하기 어려웠다. 공민왕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선다. 대신 노비 출신 승려 신돈을 등용해 경천흥, 최영, 이귀수, 양백익 등 무장들과 기존 관리들을 대거 축출했다. 원 간섭기의 국왕 대부분은 관료 집단을 불신했다. 국왕이 권력의 정점에 서지 못하고 옥상옥으로 원 조정과 황제가 존재하고 있어 왕권이 불안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노릇. 그런데 공민왕은 관료 집단뿐 아니라 자신의 측근들마저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했던 연저수종공신과 기철 제거 공신들 가운데 줄곧 자리를 지켜온 인물은 많지 않다. 발탁과 퇴출을 반복하다가 조정에서 멀어졌고, 몇몇은 죽음에 이르렀다. 저자는 "공민왕이 이들을 신뢰하지 않은 게 아니라 신뢰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옳을 듯하다"고 해석했다. "공민왕의 개인적인 성향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유숙이 낙향하면서 내린 판단, 즉 공민왕은 의심과 시기가 많다고 본 것은 정확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공민왕의 그런 개인적인 성향은 원 간섭기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좀 더 강화되었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공민왕 개인에게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사료를 바탕으로 공민왕 시대에 벌어진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기록하면서 이처럼 개인적 의견을 덧붙여 신선한 의미를 부여한다. 도구화된 역사나 박제화된 역사에서 벗어난 고려사의 재구성이다. 그 서술은 공민왕의 인간적 고민과 한계를 소상하게 그릴 만큼 생동감이 넘친다. 저자가 주목한 공민왕의 의심과 시기는 전민변정도감을 다시 설치하는 등의 개혁으로 이어진다. 이는 신진 사대부라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도래하는 계기가 됐다. 공민왕은 원 제국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자, 명과 적극적으로 사대 외교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원의 지방 정권처럼 하나의 정치체로 연결돼 온 이상 새로운 국제관계 형성은 왕조 교체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 기간을 조선의 건국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공민왕의 반원 개혁 정치는 지방 정권이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든 격이었다. 이성계 가문은 그런 반기에 적극 부응해 등장한 가문이었다. 반원 정치를 계기로 성장한 그가 역성혁명을 일으키고 조선 왕실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중략) 그러니까 반원 개혁 정치는 고려 왕조를 재건하려는 개혁적 수성(守城)의 과정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고려 왕조를 해체시키는 혁명적 창업(創業)의 단서가 되었다고 본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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