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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민의 남산 딸깍발이] 러시아 혁명 100년, 실패는 잠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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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보는 러시아 혁명 100년, 20세기 세계사를 바꾼 전환점…자본주의 자기수정, 성찰의 시작점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냉전의 그늘'이 사회를 뒤덮던 시절 이성적 사고는 억눌렸다. 사상의 자유는 사치로 여겨졌다.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모두가 숨죽이던 시절이었다. 국가는 무엇인가. 자유는 무엇인가. 억압의 사슬을 끊어낼 방법은 없을까.

대학가를 중심으로 사상의 자유를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당시 집권 세력이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옥죌수록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은 뭉게구름처럼 솟아났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관심도 그 때문이다.
러시아를 주름잡았던 정치지도자와 그들의 사상은 탐닉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동구권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를 경험하면서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과거와 비교할 때 러시아 혁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떨어졌지만 역사적인 상징성은 여전히 크다.

러시아 혁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00년 전으로 역사의 시간을 되돌릴 필요가 있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졌지만 임시정부 무능 때문에 경제 침체는 계속됐다.

11월7일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당원들은 평화와 토지, 빵을 약속하며 정부청사와 전신국 등 당시 주요 국가기관을 점령했다. 이른바 '10월 혁명'으로 불린 러시아 혁명은 그렇게 시작됐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주도한 인물이다.
러시아 혁명에 대해 접근하려면 몇 가지 단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볼셰비키, 코뮌주의, 소비에트 등이다. 볼셰비키는 레닌을 열광적으로 지지한 정치세력이다.

코뮌주의는 자유로운 개인의 개성과 차이가 존중되는 공동체적 삶을 꿈꾸는 사상적 경향을 의미한다. 소비에트는 러시아어로 '평의회'라는 뜻으로 노동자, 농민, 병사들의 자치 기구다. 레닌은 볼셰비키 지지를 토대로 소비에트를 통해 코뮌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 100년 /정재원 최진석 엮음 / 문학과 지성사/ 2만3000원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 100년 /정재원 최진석 엮음 / 문학과 지성사/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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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역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세계 역사를 바꿔놓았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은 20세기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한국에서 러시아 혁명에 대한 접근은 쉽지 않았다. 사회학자와 역사학자들은 러시아 혁명에 관심을 보였지만 경직된 사회 분위기는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억제했다. 하지만 국내 민주주의가 성숙하면서 사회 분위기는 많이 개선됐다.

러시아 혁명 100년을 맞아 다양한 형태의 연구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문학과지성사가 내놓은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 혁명 100년'은 한동안 봉인돼 있던 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한 길잡이다. 특히 1권은 정재원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최진석 박사를 비롯해 학자 열 명이 정치와 사회 등 다양한 시각에서 러시아 혁명을 분석한 논문집이다.

러시아인문대학에서 문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진석 평론가는 "러시아 혁명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오랫동안 냉전 이데올로기에 좌우됐고 도식적인 해석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온갖 화려한 아카데미적 수사와 속 빈 강정 같은 구호나 강령을 내려놓은 채 100년 전의 사태 속으로 시선을 돌려 철저하게 분석하고 냉정하게 종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혁명은 부패한 관료와 무능한 국가의 폐해에 대한 저항으로 분출됐다. 하지만 소련은 마르크스가 꿈꿨던 코뮌주의 실현의 공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탈린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사상가인 트로츠키는 스탈린 시절 소련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구절은 스탈린 전체주의 체제의 가혹성에 비하면 관대한 표현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킨 원인이 됐다. 소련의 '노동의무제'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강압적 노동 동원은 사회 구성원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면서 "의식주마저 제대로 지원이 안 되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노동의 생산성은 낮을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소비에트는 민중자치의 토대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공장 단위에서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고자 새로운 체제를 도입했지만, 과거의 문제가 새로운 형태로 반복됐다는 얘기다.

사회 문제의 원인을 둘러싼 진단법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장한닢 서울대 서양사학과 석사는 "볼셰비키는 성매매를 여성 노동자에게 특히 가혹한 자본주의 체제와 방탕한 생활을 용인하는 부르주아 가족 제도가 중첩된 결과로 바라봤다"면서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에도 성을 판매하는 여성과 성을 구매하는 남성은 지속적으로 존재했다"고 했다.

자유로운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꿈꿨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특히 문화와 예술 분야의 경직된 사고가 문제였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사회주의자들은 공산당원이기도 했던 20세기 초의 피카소조차 예술적으로 수용하지 못했다"면서 "1930년대 초 아방가르드의 숙청과 19세기적 리얼리즘 감각으로의 회귀야말로 러시아 혁명이 역사적 '반동'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징후적으로 드러내 주는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 혁명은 한계를 드러냈지만, '실패의 역사'에도 교훈은 담겨 있다. 냉전시대부터 이어졌던 체제 대결은 사실상 자본주의 완승으로 정리되고 있지만, 세계 역사의 진전은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이뤄진 결과라는 얘기다.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정직한 관찰자라면 러시아 혁명이 아니었다면 그 후 자본주의는 자기수정의 가능성을 쉽사리 찾을 수 있었을 것인가, 찾는다 하더라도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인가를 물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혁명을 둘러싼 극단적인 시선에서 벗어날수록 역사의 교훈을 얻어낼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진단은 오늘날의 의미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진석 평론가의 제안은 경청할 대목이다.

"러시아 혁명은 부당하게 폄하됐고 소비됐으며 끝내 망각되고 말았다.…우리는 100년 전 러시아에서 벌어진 인류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오늘의 이상을 새로이 그러나 다르게 설정해야 할 것이다."




건설부동산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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