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Economia] 쫓겨나는 원주민, 또 다른 인권침해…어떻게 맞서야 하나

안티 젠트리피케이션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마지막까지 버티며 목멘 나의 동넨/ 끝내 높은 빌딩이 들어서네/ 여기저기 재개발 사라져가는 내 삶의 계단/ 고장나버린 삶의 페달 나는 또 다시 맨발/ 맨날 아픔은 반복되고 나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 강북 강남 다른 땅값/ 그 사이로 장난처럼 흐르는 한강/ 참나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끝이 없는 사막뿐인데/ 나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 내 추억은 어디서 자라야 하나/ 이렇게 난 떠나 가야만하나/ 가난만이 내가 가질 전부인가/ 내 말 한마디 들어줄 사람/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건가/ 그럼 도대체 나는 뭔가


2인조 힙합그룹 리쌍(개리·길)의 6집 수록곡 '부서진 동네' 1절 가사다. 멤버 개리(본명 강희건·39)가 가사를 직접 썼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리쌍은 지난해 세입자간 분쟁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2010년 11월 문을 연 곱창집 '우장창창'은 2012년 5월 건물주가 리쌍으로 바뀌면서 계약 갱신 거절을 통보받았다. 리쌍은 우장창창 자리에서 직접 장사하겠다고 했다. 2013년 8월 건물주와의 합의로 우장창창은 영업하던 1층에서 지하로 옮겼다. 1층은 리쌍 가족이 운영하는 '포차'로 바뀌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양측은 주차장 용도 변경 안으로 갈등을 빚더니 급기야 리쌍 측이 계약 갱신을 거절했다. 지난해 4월 부동산 인도 강제집행 계고장이 발행됐고, 7월 두 차례 강제집행이 있었다. 올해 3월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원상태로 돌아갈 순 없었다. 건물은 커피전문점에 임대(보증금 5억, 월세 2600만원, 7년 계약)됐다.

'리쌍 사태'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잘 설명하는 사례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이 대거 유입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다른 곳으로 내몰리는 현상이다. 서울의 가로수길, 상수동, 경리단길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영국의 도시사회학자 루스 글라스(1912~1990)는 1964년 부정적 도시 변화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이 개념을 사용했다. 젠트리(gentry)라는 영국의 전통적 계급 용어를 통해 풍자를 시도했다.

논문에서나 보이던 이 용어는 이제 대중 언어가 됐다. 2011년까지만 해도 한 자릿수 보도 건수를 보이던 관련 기사는 2012년부터 증가해 2014년 45건, 2015년 813건으로 폭등했다. 국립국어원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외래어가 자주 사용되자 2016년 5월 '둥지 내몰림'이라는 대체 용어를 제안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한국의 도시화 과정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발생한 주택재개발 및 도심재정비의 역사가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시인 김광섭(1905∼1977)이 '성북동비둘기(1968)'에서 토로했듯 196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에 따른 이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쫓겨난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도시형 재난이다. 이 책의 저자 열두 명은 우리 생활 가까이 침투한 젠트리피케이션에 어떻게 저항할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모두 재난의 당사자들이거나 이들과 연대해온 사람들이다. 실천 활동을 통해 축적된 경험과 고민을 집대성했다.

이 책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인권 침해로 보고 강제퇴거금지법을 제정해야한다고 주장(2장)하거나 '재난학교'를 설립해 이에 대항하는 움직임(3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현장을 담은 사진과 글은 이들의 투쟁을 보여준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불평등 관계를 시정할 수 있는 법제도 개선의 방향을 언급(9장)하거나 지방도시 쇠퇴와 도시재생 정책의 문제점을 짚고, 축소 도시로의 전환(10장)을 꾀하기도 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다. 건물주 입장에서 본다면 젠트리피케이션은 재테크일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사는 세상이다. 개혁과 변혁의 운동 자체가 의미 없는 움직임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도시민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할 때다. <안티 젠트리피케이션/미류 외 11인 지음/신현방 엮음/동녘/1만9000원>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